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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칼럼
친절하지 않은 그러나 kind한
1. 친절한 의사 1
이 글의 원래 제목은 ‘친절한 의사를 찾으세요? 그럼 저는 아니네요.’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사람마다 ‘친절’의 정의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았다.
친절: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네이버)
Kind: doing things to help others and showing that you care about them (Cambridge)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함 또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것을 보임, 케임브리지 사전)
Kind: saying or doing things that show that you care about other people and want to help them or make them happy (Longman)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쓰거나 그들을 돕거나 또는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 또는 말하기, 롱맨사전)
이들 사전들에 정의에 따르면 나는 친절한 의사이기도 하고 친절하지 않은 의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을 [친절하지 않은 그러나 kind한]으로 바꿨다.
2. 정보의 비대칭성 1
30년 전 중학생 때 나는 워크맨을 사기 위해 용산전자상가에 갔다. 점원의 상술에 뭔가 속은 듯한 느낌으로 원하던 물건 대신 다른 물건을 구입했다. 반품도 교화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용산전자상가는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종류의 워크맨이 어느 정도 가격을 하는지 스스로 비교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컴퓨터 모니터를 사기 위해 LG매장을 방문했다. 젊고 말끔하게 생긴 직원이 다가와 모니터를 구입을 친절히 도와주었다. 나는 이미 인터넷으로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모델을 정했기에 결정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 직원은 매우 친절했지만 오히려 모니터에 대해서는 직원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공산품 특히 전자제품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요즘은 거의 없다.
3. 친절한 의사 2
의대에 들어가기 전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의사가 된 이후 그 생각은 더욱 확고 해졌다. 친절한 의사가 좋은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의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친절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 제공이다. 그런 면에서 네이버 사전에서 정의된 친절(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에 따르면 나는 친절한 의사가 아니고 친절하고 싶지도 않다.
케임브리지와 롱맨사전의 정의(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하는 것 또는 그들에게 마음을 쓴다는 것을 보이는 것. 다른 사람을 돕기 원하거나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따르면 나는 꽤 kind한 의사이다. 그것은 내가 의사가 되고자 했던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다른 많은 직업이 사람을 돕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직업이 의사라고 생각한다.
4. 정보의 비대칭성 2
환자와 보호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돕고 싶다. 유튜브에서 수많은 의료 정보가 있지만 내가 만나는 환자 개개인의 각각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의료는 여전히 비대칭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아무리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다 하여도 물건을 사는 것처럼 자신의 수술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의사의 친절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할 수 없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의사의 친절도 사랑도 아니다. 의사는 어떻게든 우산을 만들던 우산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5. 친절하지 않은 그러나 kind한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우면 되지 않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상황에 따라서는 꼭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환자의 필요를 파악하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수술하는 동안 마치 전쟁터의 군인이나 화마 앞에 소방대원과 같다. 감정노동으로서의 친절은 나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감정노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같은 말로 나는 친절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대신 감정노동에서 요구하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다 사용하고 싶다. 그래서 때론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질병에 대하여는 의도적 apathy로 반응한다.
‘의학의 목표는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고 언제나 위로해준다.’라는 감성적인 말은 지금처럼 질병의 최전선이 아닌 좀 후방에 가서 하는 걸로 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