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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칼럼
3분 진료의 미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안상현
미국 보스턴에서 연수 때 이다. 막내 아이가 2층 침대에서 떨어서 빗장뼈(쇄골, clavicle)이 부러져 Boston Children's Hospital의 응급실에 갔다. X-ray검사 후 고정띠를 받고 퇴원했다. 한달 후 외래를 다시 방문하여 X-ray를 찍고 담당 전문의를 만났다. 한국에서와 달리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실에 먼저 들어가 준비를 하면 담당 의사가 들어온다. 준비 시간을 포함하여 약 30분쯤 진료 상담을 한 것 같다.
미국에 가기 전 한국의 3분 진료와 미국의 30분 진료의 차이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직접 경험 후 나의 생각은 ‘왜 3분 만에 할 수 있는 것을 30분 동안 하고 10배가 넘는 진료비를 내지?”이다.
1. 한국에서 의사들은 외래 진료를 시작하기 전 차트와 검사결과를 통해 미리 환자 파악한다. 파악한 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준비된 질문을 하고 정해진 단계에 따라 진료를 진행한다. 오랜 시간 생각이 필요한 환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런 환자는 입원 또는 추가 검사 후 다시 환자를 만나기 전 충분히 생각한다. 즉 한국의 3분 진료는 실제 3분 진료가 아니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 된다.
2. 30분 진료, 30만원! 비행기의 비즈니스 좌석이 이코노미에 비해 쾌적하고 편하다. 하지만 당신에게 묻고 싶다. 3분 만에 할 수 있는 일을 30분 동안 하고 30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지불하고 싶은지. 당연히 30분 진료는 3분 진료에 비해 쾌적하다.
3. 2번에 연장된 내용이다. 한국 의료는 OECD국가 중 적은 의사수를 갖고 있으면서도 최고의 의술을 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나는 당연히 효율성(cost effectiveness)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개개인 의사들의 숙련도가 높기 때문에 더 잘하면서도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공의료보험의 절묘한 만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의 진료 철학은 ‘그들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주자.’ 이다. 여기서 소중한 것의 첫째는 ‘건강’이다. 그리고 다음은 ‘돈’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마가복음 5:25, 26). 내가 진료를 시작할 때 늘 마음에 상기하는 말이다.
그러나 선진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는 병원에서 더 쾌적하고 호텔 같은 서비스를 원할 수도 있다. 충분한 상담, 자신에게 집중된 간호, 1인 병실과 쉴 수 있는 공간 등. 당연히 다 돈이 필요하고 공공의료보험도 결국 국민의 소중한 돈이다. 공공의료가 허울 뿐인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제도는 결국 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을 사용할 때는 자신의 돈을 쓸 때와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그에 따라 서울대학교병원도 계속 리모델링을 하고 있고(78년 개원이래 가우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처럼 아직도 증축 중이다) 15분 심층진료(물론 진료비를 더 낸다)를 열고 입원전담의 제도(물론 이것도 돈을 더 낸다)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이 30분 진료를 하고 10배가 넘는 돈을 지불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적으로 개선되는 가운데 우리 한국의료가 갖고 있는 최대의 장점(효율성과 탁월성)이 잘 보전되길 바라며 이는 의사-환자의 신뢰(보이지 않는 계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