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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제2편] 제중원 운영권은 왜 미국 북장로회에 이관되었나?

조회수 : 7904 작성일 : 2017-08-18

1894년 9월, 고종과 조선 정부는 제중원의 문을 연 지 9년 5개월 만에  에비슨의 요구를 수용하여 미국 북장로회에 제중원 운영권을 이관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을 직접 운영하겠다는 구상은 어디로 가고 이런 결정을 내려야 했을까.

조선시대 창덕궁 후원 농수정 앞에서 찍은 고종의 사진

조선에서 가장 안쓰러운 군주, 고종
  고종 하면 우리는 보통 비운의 국왕이라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아주 만만찮은 군주였다. 그의 동도서기론은 상당히 견고한 신념이었고, 그 신념을 실현에 옮길 의지도 있었으며 노력도 기울였다. 제중원을 비롯해 통리기무아문, 우정국, 육영공원, 연무공원 등은 고종의 총체적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고종은 조선에서 가장 안쓰러운 군주이기도 했다.
  그의 시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질 여유도 없을 만큼, 주변 상황이 조선과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옳다고 믿는 사상과 정책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제중원이 운영되었던 1885~1894년만 살펴보더라도,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너무 심했고 조선을 마치 식민지처럼 다루었다. 위안스카이는 총독처럼 위세를 부리며 고종의 폐위까지 시도했다. 고종이 청나라의 눈을 피해 근대화와 자주화를 도모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 정부의 재정난도 심각했다. 19세기 내내 기근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나라의 곳간이 신통치 않았는데, 문호개방 이후 쌀값이 폭등하고 청나라의 각종 경제침탈이 거세지면서 정부의 돈줄이 말라버렸다.  고종곁에는 함께 근대화 정책을 펼쳐갈 인재와 지지세력마저 없었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는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거세되었고, 김윤식 등 온건개화파는 청나라를 보는 시각의 차이로 말미암아 고종에게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과 조선 정부가 구상했던 수많은 근대화 정책이 알찬 결실을 맺을 리 없었다. 제중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파란만장했던 1894년
 위안스카이, 김윤식, 청일전쟁에 참가한 일본군, 외교관이 된 알렌(아래쪽 그림 오른쪽에서 네번째)  하물며 1894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해였다. 전라도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전쟁, 그로 인해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갑오개혁. 세 사건 모두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국제관계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대사건들이었다.

  당시 조선으로서는 그 중 어느 한 사건만 일어났어도 감당하기 어려울 판이었는데, 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특히 1894년 7월 23일 새벽,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해버린 사건은 고종에게는 치명타였다. 고종은 국왕으로서의 자존심과 권위에 큰 타격을 입고 자연인으로서의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아야 했다.

   조선 정부도 온전한 정부로서의 권위와 기능을 상실한 채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조선 정부가 제중원 운영권 이관을 공식 승인한 날짜다. 1894년 9월 26일은 일본에 의한 타율적 개혁인 갑오개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즉 일본이 조선의 국정을 장악한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종의 교섭
 1894년 11월 20일, 알렌이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 총무 엘린우드(F. F. Ellinwood)에게 보낸 편지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알렌은 제중원 문제를 전적으로 자신이 해결했다고 자부했다. 9월 26일 제중원 운영권 이관을 승인받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알렌은 일본이 제중원을 원하는 바람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일본이 제중원을 수중에 넣고 싶어 했던 것이다. 실제로 1890년에 일본인들이 제중원 진료권을 넘겨받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아무튼 알렌은 이런 상황이 잘 해결되어 미국 북장로회에서 제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만족할 만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일본도 저를 고맙게 여기는 한편, 국왕(고종은)은 제가 조선을 구했다고 계속 말하고 있다”면서 이 내용은 극비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알렌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자의 의견을 교환하고 조정하는 데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고종(조선 정부)이 제중원 운영권을 넘긴 까닭은
  그렇다면 알렌은 제중원에 관해 고종(조선 정부)과 일본의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냈을까?   거꾸로 말하면 고종(조선 정부)과 일본이 미국 북장로회에 제중원 운영권을 넘겨준 이유는 무엇일까? 

  고종과 조선 정부는 일본이 사실상 국정을 장악한 상황에서 제중원을 일본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미국 북장로회에 운영을 맡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더구나 고종과 온건개화파 관료들은 일찍부터 미국이 사심 없이 약소국 조선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라고 기대했던 만큼, 청일전쟁 국면에서 미국에게 무언가 도움을 청하기에 제중원 운영권 이관이 유리한 카드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일본도 조선을 순조롭게 장악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외교적으로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제중원 운영권 이관을 묵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론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895년 2월 내무대신 박영효가 언더우드와 에비슨에게 명성황후의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 설립 구상을 상의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영효가 국립대학 설립을 선교사업으로 ‘위장’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는 국립대학을 조선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사업으로 시작하면 일본인들의 간섭을 받아 실패하거나 그들에게 학교를 빼앗길 것이 두려워서였다. 이로 미루어볼 때 고종이 미국 북장로회에 제중원 운영권을 넘겨준 것은 조선 정부가 계속해서 제중원을 운영할 경우 일본인들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했던 데서 나온 고육지책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더욱 심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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