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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제4편] '한국 최초의 의사'는 과연 누구인가?

조회수 : 14341 등록일 : 2017-08-18

'한국 최초의 의사'는 과연 누구인가?
  올해 1월 초부터 모 방송사에서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주인공은 백정의 아들에서 제중원 의사로 성장하는 ‘황정’이라는 인물이다. 신문 잡지의 연예면이나 인터넷상에서는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었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제1회)하고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어 독립운동에 힘쓴 박서양이라고 말이다.

  드라마 ‘제중원’과 그 원작 소설 같은 유형을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팩션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어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에 작가가 극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가공 인물과 가상의스토리를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일반 시청자나 독자들로서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가상 설정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드라마의 주인공 황정은 박서양인 걸까.

서재필(윗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콜럼비안의대 졸업사진, 박에스더부부
서재필(윗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콜럼비안의대 졸업사진과 박에스더 부부 모습 

박서양, 그는 누구인가?
  박서양은 1885년 백정 박성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봉주리’였다. 아들만큼은 무식쟁이로 키우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 덕에, 박서양은 글을 배웠다. 박성춘은 1893년 에비슨의 치료를 받고 감동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고, 아들을 에비슨에게 맡겼다. 에비슨은 박서양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됨됨이를 확인한 후 그를 세브란스의학교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마침내 1908년 박서양은 김필순, 홍석후 등과 함께 최초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모교에서 화학,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했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간도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2008년 광복절을 맞아 박서양은 ‘건국포장’을 받고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결국 박서양과 드라마 주인공 황정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첫째 백정의 아들이라는 점, 둘째 의사가 되었다는 점, 셋째 독립운동에 참여한 점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박서양은 1900년부터 1908년까지 세브란스의학교에서 에비슨에게 의학을 배웠다. 반면 황정은 박서양이 태어난 1885년에 문을 연 제중원에서 알렌과 헤론과 함께 환자를 진료한다. 그러니까 박서양보다 15년 앞서 서양의학을 배우는 것으로 나온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가상 설정으로 말미암아 시청자들은 황정, 곧 박서양이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洋醫)라고 혼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정말 한국의 최초 의사인가?
   최근에 어느 일간신문은 에비슨 관련 기사에서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1908년), 곧 박서양을 비롯한 7명이 한국의 ‘정식 의사 1호’라고 언급했다. 그들이 ‘의술개업 인허장’을 최초로 받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역사를 왜곡한 틀린 설명이다.  한국인 최초의 양의(洋醫)는 《독립신문》으로 유명한 서재필이다. 그가 한국에서 한국인에게 의술을 베푼 적도 없었고, 스스로 의사임을 내세운 적도 없었기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에 망명했고, 1892년 콜럼비안의과대학(지금의 조지워싱턴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한국인 최초로 의사가 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는 박에스더다.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의 통역 겸 보조의사로서 일하다가 미국에 건너가 1900년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4년제)을 졸업했다. 곧바로 귀국해 서울과 평양의 선교병원에서 환자들 진료에 헌신하다가 1910년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최초로 서양식 개인병원을 연 사람은 안상호다. 대한제국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1902년에 자혜의원의학교를 졸업한 후 자혜병원에서 2년간 수련했다. 1906년 일본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의사 면허증을 받았다. 이듬해에 귀국해 황실 전의(典醫)를 제안 받았으나 고사하고, 서울 종로 3가에 ‘안상호진료소’를 차렸다. 

의학교(醫學校) 졸업생, 대한제국 군의(軍醫)가 되다 
군의장 김익남과 군의 김교준 ‘정식 의사 1호’가 탄생했다고 하는 1908년보다 이미 6년전인 1902년부터는 의학교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1899년 대한제국 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 의학교육기관인 의학교를 설립했다. 첫 입학생은 모두 50명이었다. 이들은 3년 과정의 의학교육을 통해 서양근대식 의사로서 훈련을 받았다. 지석영이 교장이었고, 김익남 등이 교관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입학, 수업, 시험, 졸업 등 모든 학사가 체계와 규정대로 잘 운영되었다.  1902년 7월 4일 졸업시험이 치러졌는데, 이때 김교준 등 19명이 통과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자체적으로 양의(洋醫)들을 길러낸 최초의 순간이었다. 졸업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개원할 자격을 비롯하여 의사로서의 모든 자격과 권리를 인정받았다. 대한제국은 졸업생 대다수를 군의(軍醫)로 배치했는데, 이들은 국가 기관에 소속된 의사로서 별도의 의사면허가 필요 없었다. 

이토 히로부미, 에비슨의 청탁을 들어주다
 사설기관인 세브란스의학교 졸업생들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개업을 위해서는 별도의 자격 요건이 필요했다. 교장 에비슨은 이를 해결하고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찾아가 간곡히 청했다. 당시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데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던 만큼 한국내 선교사들에게 유화책을 구사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이토는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들이 개업할 수 있도록 의술개업 인허장을 발급해주었다. 결론적으로 1908년 이전부터 해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인사들과 의학교를 졸업한 군의관들이 이미 정식으로 의료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던 만큼,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들을 ‘한국 최초의 정식 의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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