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고정희

사진. 박순재(Studio Cube)

장소. 어반플랜트 한강대교점

결혼을 기념하는 우리만의 방식

이촌한강공원에 자리한 카페 어반플랜트에 들어서자 박우현·장혜신 후원인이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서도 이제 막 부부의 연을 맺은 신혼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박우현 후원인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10학번으로 현재 광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장혜신 후원인 역시 같은 학교독어교육과 14학번으로 금융회사에 재직 중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지인을 통해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올해 5월 16일 부부가 되었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두 사람은 처음부터 예식을 생략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하는 작은 결혼식을 생각했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굳이 필요치 않은 형식들을 하나씩 덜어내다 보니 가족과 함께 담백하게 결혼을 기념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나씩 줄이다 보니 ‘이 정도면 식을 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만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일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 축하를 받는 자리는 마련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뜻깊게 만들고 싶었던 두 사람. 그러던 중 기부 이야기가 나왔고 흔쾌히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우 리에게 찾아온 기쁨이 다른 곳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살면서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또 기부를 해보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양가 부모도 두 사람의 뜻을 기꺼이 존중해주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가장 자기들다운 모습으로 부부로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질병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운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반대로 누군가의 도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난 뜻밖의 행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받은 도움을 떠올리며

기부처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을 먼저 떠올린 건 박우현 후원인이었다. 어린 시절 치료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우현 후원인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어릴 적 수술을 받았다. 태어나자마자 병을 알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운 좋게 일찍 이상 징후를 발견한 덕에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었죠. 가족과 의료진의 보살핌 덕에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고 지금은 운동을 비롯한 평범한 일상도 자유롭게 누리고 있습니다. 마음 한편에 늘 그때 받은 도움에 대한 고마움이 남아 있었어요.”
자신은 필요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형편상 그러지 못하는 어린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기부금이 수술비와 치료비가 필요한 어린이 환아들에게 작은 도움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질병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운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반대로 누군가의 도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난 뜻밖의 행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대한 신뢰에는 장혜신 후원인의 경험도 한몫 했다. 대학 시절 의과대학 교수진의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여러 진료과 의료진을 만났는데 전공은 달라도 환자를 대하는 사명감만큼은 남다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교수님들의 진정성을 느끼면서 이런 의료진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의 마음도 꼭 필요한 곳에 잘 쓰이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저희의 작은 손길이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망설이는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날의 기쁨을 나누는 일

기부를 결심하고도 사실 아주 잠시 망설임은 있었다. 기부금을 입금하려던 시기에는 주식시장이 한창 좋았고 주변에서도 투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결심할 때보다 막상 돈을 이체하려는 순간에 잠깐 고민이 되더라고요.(웃음) 다들 빚을 내서라도 주식에 투자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기부를 마치고 나니 아쉬움보다 뿌듯함이 훨씬 컸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생겼고요. 그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부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면서 부부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깊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 10주년 같은 특별한 날에 꼭 다시 기부하자 약속한 것도 나눔을 한 번의 일로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제 힘으로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며 자랐으니 저희도 조금씩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기쁘고 좋은 순간이 생기잖아요. 그럴 때 기부도 삶을 기념하는 근사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나눔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두 사람은 “우리의 행복을 모두의 행복으로”라고 답했다.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쁨이 두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치료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행복으로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눔이라는 아름다운 첫걸음을 뗀 두 사람은 앞으로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차곡차곡 따뜻한 일상을 채워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