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고정희

사진. 박순재(Studio Cube)

타인이 내민 따뜻한 손길, 나눔의 씨앗이 되다

경기도 안산시 팔곡산업단지에 자리한 이피코리아는 반도체 리드프레임과 스마트폰 카메라용 부품 등 첨단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초정밀 금속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를 이끄는 양해권 후원인은 스스로를 ‘한평생 에칭(Etching)쟁이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대학 졸업 후 삼성에서 기술과 영업을 경험한 그는 1993년 독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영업부터 설계, 제조, 납품까지 혼자 도맡았던 1인 기업이었다. 어렵게 회사를 꾸려가던 중외환위기를 맞았으나 27개월 동안 임대료를 유예해 준 건물주의 배려 덕분에 폐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천천히 갚으라며 기다려주셨어요. 나중에 모두 정산해 드렸지만 그때 받은 은혜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련을 견뎌낸 기억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부친이 큰 사고를 당해 가정 형편이 어려울 때가 있었다. 사정을 알게 된 학급 친구들이 개학과 함께 모금 활동을 벌여 라면과 학용품을 들고 그를 찾아왔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학교와 친구들에게 받은 따뜻한 마음이 가슴 깊이 새겨졌던 것 같아요.”
이 가슴 따뜻한 기억은 훗날 청소년 후원으로 이어졌다. 2000년 무렵 회사가 있던 안산의 한 중학교 배구부 학생들을 후원하기 시작했고 이후 강원도 횡성군 둔내에 머물며 한부모, 조손,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을 꾸준히 도왔다. 어느 날은 지원을 받은 둔내고등학교 학생 열댓 명이 교장 선생님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와 손으로 쓴 감사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편지도 고마웠지만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교장 선생님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아이들은 자라서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어른이 될 거라 믿습니다.”

세 번의 아픔이 바꾼 기부의 방향

청소년 후원에 집중하던 기부의 방향은 잇따른 건강 위기를 겪으며 확장되었다. 2018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심근경색이 찾아왔고 2022년에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긴급 수술을 받았다.
“큰 병을 겪고 나니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살려준 의료기관과 아픈 환자들을 돕는 쪽으로 기부 범위를 넓혀야겠다고 다짐했죠.” 기존의 학생 후원을 계속 이어가면서 환자와 의료 발전을 위한 기부를 더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전달한 기부금 일부는 난치병 및 의료 연구에 쓰이길 바랐다. 병원을 다니며 원인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고통받는 환자들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이 꾸준히 연구되어야 환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 마음이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바랐습니다.”
특히 갑상선암 수술 후 세심히 진료를 이어온 조선욱 내분비대사내과 교수의 세심한 배려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체중을 감량한 뒤 병원을 찾았을 때 조 교수는 달라진 몸 상태를 살피고 약 용량과 진료 간격을 세밀하게 조절해 주었다.
“대형병원에서 환자 한 사람의 변화를 이렇게 세심히 살피기는 쉽지 않습니다. 약이 하루 일곱 알에서 다섯 알로 줄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진심 어린 관심이 참 고마웠습니다.” 나머지 기부금은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병원 측의 판단에 맡겼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의료진의 판단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이
꾸준히 연구되어야 환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 마음이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바랐습니다.”

판단할 수 있을 때, 미루지 않고

생사의 고비를 넘어선 후 양해권 후원인은 좋은 일을 미루지 않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당초 일정한 나이가 된 후 기부하겠다던 가족과의 약속보다 앞당겨 보유 주식의 가치가 올랐을 때 일부를 정리해 조기 기부를 실천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제 판단력이 명확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해두고 싶었습니다.”
가족들 역시 그의 뜻을 흔쾌히 존중해 주었다. 자녀에게 자립을 위한 기본 기반만 마련해 주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소신을 오래전부터 공유해 왔다. 아들과 함께 기부에 동참한 것 역시 나눔의 가치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아들이 지금 당장 큰 기부를 하긴 어렵더라도 부모를 통해 기부를 경험해 본다면 나중에 더 쉽게 나눔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식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결실 역시 오랜 기간 함께 고생한 직원들과 나눌 계획이다. 자녀 승계 대신 전문경영인 체제를 준비 중이며 향후 회사가 매각되면 근무 기간을 기준으로 직원들에게 성과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오랫동안 헌신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날 때 ‘나에게도 보람과 결실이 돌아오는구나’ 하고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는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재산의 크기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재물을 움켜쥐기보다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지론이다.
“기부를 하면 엔도르핀이 돌며 마음을 한층 능동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몸이 좋지 않은 날에도 나눔은 제가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받았던 도움을 가슴에 품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는 양해권 후원인. 그는 앞으로도 나눔의 자리를 차곡차곡 채워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