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정윤선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공학으로 유명한 MIT에 왜 암연구소가 있을까?

공학으로 유명한 MIT에 왜 암연구소가 있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코흐 통합 암연구소의 설립 취지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소의 기부자인 데이비드 H. 코흐(David H. Koch)는 MIT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기업인이자 암 생존자였습니다. 그는 암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생명과학만으로는 부족하며 공학과 다양한 학문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2007년 MIT에 코흐 통합 암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코흐 통합 암연구소에서는 설립 취지대로 생물학자와 공학자가 한 공간에서 연구합니다. 계산과학과 데이터과학, 나노기술 등 다양한 공학적 접근을 암 연구와 결합해 새로운 치료법을 모색하는 말 그대로 ‘통합(Integrative)’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암연구소에 왜 중환자의사가 연수를 온 걸까?

저는 코흐 통합 암연구소 3층에 위치한 야피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을 이끄는 마이클 B. 야피 교수님은 외상외과 전문의이자 중환자실 의사이며, 세포 신호전달(Cell Signaling)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입니다. 야피 연구실은 암세포가 왜 환자마다 서로 다른 약물 반응을 보이는지에 주목합니다.유전자 정보, 단백질 신호전달, 세포의 기능적 상태, 면역반응, 그리고 계산생물학적 분석을 함께 활용하여 각 환자의 암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이해하고 가장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찾고자 합니다.
저는 패혈증과 심정지 같은 급성 중증 질환을 진료하고 연구하는 의사입니다. ‘암에서 발전한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의 개념을 급성 중증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MIT에 왔습니다. 야피 교수님은 저에게 계산생물학을 배워보라고 권하셨고 더글라스 A. 라펜버거(Douglas A.Lauffenburger) 교수님과 포리스트 M. 화이트(Forest M. White) 교수님의 ‘생물학적 데이터의 계산 분석(Computational Analysis of Biological Data, 과목 코드 20.260)’ 수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계산생물학은 유전자와 단백질 등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수많은 정보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질문과 토론으로 배우는 MIT의 연구 문화

MIT에서의 수업은 내용만큼이나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학생 사이에서 조용한 청강생으로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강의실에 들어갔지만 첫날부터 숨을 곳은 없었습니다. 학생은 스무 명 남짓인데, 교수님 두 분과 조교 세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젊은 포리스트 M. 화이트 교수님이 단백질체학(proteomics)과 전사체학(transcriptomics)을 칠판에 설명하다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손을 들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질문했고 교수님은 그 질문을 다시 토론으로 이어갔습니다. 마치 탁구공이 오가듯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강의였습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더글라스 A. 라펜버거 교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인 라펜버거 교수님은 젊은 화이트 교수님의 강의 내내 맨 뒷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으셨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와 화이트 교수님과 함께 칠판을 지우는 모습에서 MIT의 교육 철학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실습 시간에는 세 분의 조교가 학생들과 함께 파이썬(Python)을 이용해 실제 생물학 데이터를 분석하며 연구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주 2회 수업에 매번 숙제가 주어지고 중간·기말 프로젝트에도 일일이 코멘트가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교수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놀라웠습니다. 계산생물학뿐 아니라 교육의 가치 자체를 몸소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MIT 20번 빌딩에서 수업을 마치고 야피 연구실로 돌아오면 계산생물학 전문가인 브라이언(Brian)의 지도를 받으며 패혈증 환자의 생물학적 변화를 계산생물학적 방법으로 해석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실제 연구에 적용하면서 사고의 폭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계산생물학, 중증 질환 연구에 새로운 길이 될까?

급성 중증 질환은 암과 달리 환자의 상태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변화합니다. 암 연구에서 발전해 온 계산생물학이라는 방법론을 급성 중증 질환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앞으로 제가 풀어가고 싶은 과제입니다. MIT는 그 첫걸음을 내딛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오늘도 찰스강변을 따라 연구소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공학과 생물학의 만남이 암 연구를 바꾸었듯, 계산생물학은 앞으로 급성 중증 질환 연구에도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까? MIT는 그 질문을 연구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준 곳이었습니다. 이제 그 질문을 품고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돌아가, 급성 중증 질환 연구에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정윤선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응급 중환자의학을 전문으로 하며 응급실과 응급중환자실에서 중증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와 임상강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진료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패혈증과 심정지 등 급성 중증 질환을 이해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로 연결하기 위한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