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등
우리는 빛을 통해 사물과 사람을 본다. 야외에서는 시간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태양빛으로 주변을 인식하고, 실내에서는 천장등이 밝힌 공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본 작가 역시 사진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빛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빛은 공기나 물처럼 언제나 곁에 있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빛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사진을 뜻하는 영단어 photograph가 빛을 의미하는 ‘photo’와 기록한다는 뜻의 ‘graph’로 이루어진 것처럼 빛이 없다면 사진도 존재할 수 없다.
전문적인 사진 작업에는 자연광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플래시와 일정하게 빛을 내는 LED 조명이 사용된다. 나는 주로 스포츠 선수와 무용수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을 촬영한다. 그들의 동작과 신체가 가진 긴장감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조명의 크기와 형태, 거리와 방향, 밝기를 고려해 여러 개의 빛을 배치한다. 조명 하나를 더할 때마다 그 빛에는 분명한 역할이 주어진다. 선수의 몸을 배경에서 분리하고, 팔과 다리의 윤곽을 강조하며, 지나치게 짙은 그림자를 옅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빛은 인물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어떤 빛은 얼굴과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그렇게 사진가가 선택한 빛과 그림자에는 그의 생각과 판단이 담긴다.
사진가에게 빛은 언어이다. 같은 사람을 촬영하더라도 빛의 방향과 크기, 거리와 강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와 감정이 드러난다. 한 사람의 얼굴을 순식간에 차갑게도, 따뜻하게도보이게 할 수 있다. 단어나 문장을 쓰지 않아도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마치 어떤 이야기를 건넨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사진가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자신의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한 장의 이미지 안에 기록한다.
이번 칼럼을 준비하며 조금 낯선 빛을 알게 되었다. 바로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무영등이다. 無影燈. 없을 무, 그림자 영, 등불 등. 이름 그대로 그림자를 없애는 등이라는 뜻이다. 빛이 사물에 가로막히면 그 뒤에는 그림자가 생긴다. 그러나 무영등은 여러 방향에서 빛을 보내 의료진의 머리와 손, 수술 기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서로 희석한다.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 어느 한쪽의 빛이 가려져도 다른 방향에서 오는 빛이 수술 부위를 계속 밝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사진가는 피사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림자를 만든다. 반면 의료인은 환자의 몸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 시야를 방해하는 그림자를 줄인다. 사진가는 사람을 더 깊이 보여주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고, 의료인은 생명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 그림자를 지운다. 같은 빛을 사용하지만 서로 반대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두 빛의 목적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사진가에게 조명이 단지 대상을 밝히는 장비가 아니듯 의료진에게 무영등도 단순히 환부를 비추는 등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판단하기도 어렵다. 수술실 위에서 다발의 빛을 보내는 무영등은 생명의 경계에서 의료인의 판단이 흔들리지 않도록 돕는 빛이다.
사진가의 조명 역시 자신만을 위한 빛은 아니다. 내가 선수와 무용수에게 빛을 비추는 이유는 그들의 신체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열정과 정신까지 사진 속에 담아내고 사진을 의뢰한 사람에게 오래 간직할 만한 결과물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특히 상업사진에서는 사진가 한 사람의 취향만으로 조명을 설계할 수 없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이미지와 피사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 그 사진을 바라볼 대중의 감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때 조명은 사진가 개인의 언어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의 생각과 목적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모으는 공동의 언어가 된다.
나는 빛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며 스스로를 빛의 신봉자라고 생각한다. 빛이 제대로 닿은 사람과 사물은 대부분 아름답거나 멋있다. 빛이 달라지면 공간의 분위기와 공기의 감도까지 달라지고 평범하게 지나쳤던 얼굴에서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표정이 드러난다. 내가 촬영 현장에서 빛을 믿는 것처럼 수술실에서는 의료진과 환자가 무영등의 빛을 믿고 있을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빛이 누군가의 기술과 의지를 만나는 순간 사람을 살리고 기억을 남기며 관계를 밝히는 언어가 된다.
이준희 사진작가
스포츠 선수와 무용수의 움직임을 빛과 연출로 재해석하는 아트 스포츠 사진작가다. 스포츠·퍼포먼스 전문 사진 브랜드 아이모션(iMOTION)을 이끌며, 기록을 넘어 선수와 무용수의 움직임과 서사를 하나의 이미지로 설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소셜 포토그래퍼로서 공공기관 및 기업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으며, 부산장애인체육회와 장애인 스포츠 인식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 사상구청과 함께한 〈춤추는 사상〉 프로젝트에서는 지역의 일상과 사회적 메시지를 빛과 춤으로 기록했다. 소니코리아 아티잔 프로페셔널 앰배서더이며 SMDV, 유쾌한생각, 난라이트 등 사진·조명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진집 &;t'춤추는 사상-일상을 뒤집는 빛과 춤의 다큐멘터리>와 사진가로 살아온 과정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 <빛과 디렉션>이 있다. <빛과 디렉션>은 2026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