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예은

사진. 박순재(Studio Cube)

침묵 속에서 시작되는 시간

간담췌외과 홍서영 교수는 간세포암과 전이성 간암을 비롯한 다양한 간종양을 간절제술, 간이식과 같은 수술로 치료한다.
“ 예전에 우리나라는 B형 간염의 유병률이 높아 간암이 매우 흔한 나라였어요. 하지만 국가 예방접종이 시행되면서 B형 간염이 크게 줄었고, 간세포암 발생률도 이전보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죠. 의료기술도 크게 발전했어요. 과거에는 수술이 어렵다고 여겨졌던 전이성 간암도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절제술을 시행해 예후가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침묵의 장기’인 간은 병이 진행되어도 증상이 거의 없어 환자 대부분이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B형 간염 보균자나 간경변 환자를 대상으로 정기 추적 검진을 권하기에 이 검진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많지만, 특별한 증상 없이 우연히 암을 발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저는 아픈 곳이 하나도 없는데요’입니다. 그만큼 간암은 별다른 증상 없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불안과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 알지 못하기에 두렵다. 홍서영 교수는 환자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한다. 환자가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홍서영 교수는 환자가 중심을 잘 잡도록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돕는다.
“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정보를 찾고 공부해오는 일도 많아요. 서울대학교병원 차원에서도 관련 가이드와 교육 자료를 많이 만들어 두었고요. 하지만 이 정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내용이어서 환자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정보로 마음 상하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불안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홍서영 교수는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한지 알기에 검사와 다학제 진료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한다. 보통 2, 3주 안에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수술적 처치를 최대한 빨리 진행해도 그 기간 중에 종양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크다. 홍서영 교수는 그 기간 동안 치료 방향이 바뀔 정도로 병이 급격히 진행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을 설명하며 환자의 불안을 덜어준다.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느냐에 따라 걱정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 간암 절제 수술을 앞둔 환자들은 간에 좋은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자주 묻는다. 그러나 홍서영 교수의 답은 단호하다.
“ 특별한 건강기능식품보다 평소처럼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절한 운동이 훨씬 더 중요해요. 검증되지 않은 식품은 오히려 간에 무리가 될 수 있거든요.”
뇌사자 간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라면 기다리는 시간에 비례해 불안이 더욱 깊어진다. 언제 기증자가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증도에 따라 간이식 순번을 매기기에 간 기능이 비교적 유지되고 있는 경우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한다. 생체 간이식은 대부분 가족이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하는 만큼, 환자는 공여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더 크게 품는다. “ 대개는 가족분들이나 가까운 지인이 공여를 하는 만큼, 환자분
들은 자신보다 공여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더 힘들어하세요. 공여자분이 무사히 일상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게 저희의 일이라고 설명드리죠.”
이처럼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질병 자체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그래서 홍서영 교수는 외래에서 치료 계획을 가능한 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검사를 받게 되는지, 언제 수술을 하는지, 수술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까지 하나의 로드맵처럼 말이다.
“ 인터넷에는 의료 정보가 넘쳐나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얻은 일반적인 정보는 개인의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의료진이 해야 하는 일은 환자에게 꼭 맞는 정보를 전달해 막연한 불안을 줄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보호자에게 의지해 오시다가
몇 주 후에는 환자분이 두 발로 걸어 외래에 오셨을 때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이식 직후 퇴원하실 때만 해도 스스로 거동하기 어려우셨거든요. 다시 일상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우리

간세포암은 재발률이 높은 질환이다. 대부분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으로 손상된 간에서 생기는데, 수술로 암을 제거해도 이런 배경의 간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환자는 평생 정기검진을 받으며 관리해야 한다. 이 긴 치료 과정은 외과 의사 한 사람만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수술 여부와 치료 방향을 결정할 때는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이 함께 논의하고, 수술실에서는 마취통증의학과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이 긴밀하게 호흡을 맞춘다. 간이식 역시 감염내과와 심장내과, 이식 코디네이터, 이식 약사, 영양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생체 간이식은 가족의 사랑과 돌봄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의료 현장이다. 환자의 가족들이 ‘제가 더 잘 챙기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하는 죄책감을 안은 모습과 만난다. 홍서영 교수는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생체 간이식을 진행할 때는 공여자의 안전과 환자의 회복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균형감 있게 말씀드리려 해요. 때로는 공여자분이 '환자분이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씀하실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홍서영 교수가 생각하는 회복은 수술이 성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아침을 맞이하고, 가족과 식사를 하고, 직장으로 돌아가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이다. “ 수술 이후에는 환자 스스로도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찾아가시는 것 같아요. 식단이나 운동을 여쭤보기도 하고요. 이식 수술의 경우 퇴원 이후 일정 기간 매주 외래로 방문해 예후를 살피는데요. 처음에는 보호자에게 의지해 오시다가 몇 주 후에는 환자분이 두 발로 걸어 외래에 오셨을 때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이식 직후 퇴원하실 때만 해도 스스로 거동하기 어려우셨거든요. 다시 일상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죠.” 간암을 진단받는 순간부터 환자는 긴 치료의 시간을 지나게 된다. 그 시간을 혼자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 의료진은 병을 치료하는 사람에서 그치지 않는다. 치료의 끝에서 환자가 다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하는 동반자다. 홍서영 교수와 의료진은 당신이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함께 돌본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돌보듯이.

홍서영 교수와 늘 함께하는 배지들로, 위에서부터
서울대학교병원 간팀 마스코트 ‘간들간들’, 소아이식캠프, 대한이식학회 술기 워크숍 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