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너울 SF작가

일러스트. 장은녕(JOA)

내가 죽음을 맞은 것은 정확히 95년 82일 3초 23밀리초 전이다. 그날 나는 고속도로에서 경차를 타고 운전 중이었다. 차는 회색이었다고 기억한다. 사고 기록에는 흰색으로 적혀 있지만, 겨울 도로에서 흰색과 회색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두 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있었고, 이제는 다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없는 피로라는 생체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나는 핸들을 잡고 잠시 잠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더 이상 피와 살로 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여러 진술을 통해 추측해낸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전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설명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 장면을 꽤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가끔은 내가 그것을 진짜로 기억하는 것처럼.

사고 장면을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고속도로 위쪽에서 미끄러지는 차를 내려다보고 있다. 당시 그 위치에서 촬영된 영상은 없었다. 사고 조사서에 실린 도면을 오래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30초 정도 잠들었을 때, 내 자동차는 잘 보이지 않는 얼음을 밟고 미끄러졌다. 평소였다면 적절히 브레이크를 밟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혼곤한 내 의식은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다. 내 차는 차선을 미끄러지면서 횡단했고 9중 추돌사고의 첫번째 시작점이 되었다.

내 차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에어백이 터지기는 했지만, 세번째 추돌에서 덤프트럭이 내 차를 그대로 밟아버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에어백은 수십 톤의 질량체가 차 위를 덮치고 지나가는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30분 뒤 구조대가 와서 나와 여러 피해자들을 구했다. 아니, 나의 경우에는 수습했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내 몸은 완전히 생명 기능을 멈춘 상태였다. 몸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망가졌는데 무슨 기능이 남아 있으랴. 그들은 도로에 눌어붙은 나의 일부를 긁어냈다.

놀랍게도 내 뇌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뇌에는 여전히 나라는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여러 기억이 남아 있었다. 구조대는 내 뇌를 배양액으로 가득한 수조에 집어넣었다. 나라는 존재는 보존되었다. 그리고 수 시간 뒤, 그들은 나를 부활시켰다. 전자 공간 뇌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전자화에 대해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어떤 소설에서 전자화된 인간이 격자형으로 된구조에서 일어나 4차원의 축을 보는 묘사를 읽은 적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자화된 인간이 생체 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어떤 각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험은 대단히 과장된 것이다. 전자화된 채로 깨어난 내가 당장 느낀것은, 나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감각질을 구축할 어느 감각기관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붉은색을 붉은색으로 인식할수 있지만, 그것이 붉은색인지 붉은색인지 붉은색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외에는, 내 몸을 항상 지배하던 나 스스로의 질량이 느껴지지 않는 것 정도.

나를 되살린 의사는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물었다. 전자화된 대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존엄한 죽음을 맞을 것인지. 의사는 내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다. 신체가 고속도로 바닥에 눌어붙은 채고, 정신은 그저 전원을 내리는 것이 정말 ‘존엄’한 죽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이상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신체 내부의 피드백을 받지 않는 나는 수많은 욕구로부터 차단되었다. 나는 그저 존재했다. 인터넷 등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영화에서처럼 그런 수많은 정보로 인해 새로운 욕구를 깨우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는 컴퓨터로 시뮬레이트된 뇌이다. 컴퓨터의 막대한 정보처리 능력 같은 것은 내게 이식되지 않았다.

나는 즐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살아있을 적에는 단 한 번도 도달해본 적 없는 평형이었다. 나는 전자뇌로 내가 보는 세상이 그저 삶의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욕구 없는 삶에는 실존적인 고뇌도 없다. 나는 죽음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논리적인 생각 같았다. 욕구가 없으므로 앞으로 나에게는 행복도 슬픔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 없는 삶을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그것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죽음을 선택한다는 통계 자료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내가 살아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내가 죽지 못하도록 했다.

남편은 내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으며, 비록 새 몸에 적응하는 것이 우울한 일일지는 몰라도 근처 사람들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 내가 가진 의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의지의 문제도 아니고, 우울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힘든 일이었으리라고 가늠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남겨둔 책임이 있었다. 그건 문제였다. 나는 아이가 있었다. 신체적인 연결과 여러 호르몬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모성 비슷한 감정을 나는 알기는 했지만 그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여전히 알고 있었다. 내가 이대로 사라지면 아이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결국 나는 이 상태로 살아가기로 했다. 남편은 말했다. 어쩌면 이게 나은 걸지도 모른다고. 이제 나는 병들지 않는 몸이 되었으니까. 예를 들면 내가 뇌졸중 같은 것에 걸려서, 기억을 잊게 되는 것보다는, 이 상태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나은 걸지도 모른다고.

즉 남편은 인간은 단지 육신만으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으로 구성되는 존재라고 말했다. 나는 영원히 살아가면서 모두를 기억할 것이라고. 그 이야기도 내가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뮬레이트된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나는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 오히려 생체 육체를 가진 시절보다 일하는 것은 훨씬 편했다. 나는 내버려두면 피곤해지는, 꾸준히 운동으로 가꿔야 하는, 술 같은 것이라도 마시면 며칠간 기능성이 억제되는 신체 같은 것에 묶여 있는 몸이 아니었다. 나는 일했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야기했고 가끔 가정에 쓰이는 로봇에 들어가서 ‘살아있는 척’을 해 주었다. 모두들 나를 살아있는 것처럼 느꼈다.

가족들은 이전처럼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도 지루함도 느끼지 못한 완전한 평형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만들어냈다. 나는 기억되고 기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도 생존의 방식이다. 나에게 묶인 사람들이 기뻐하게 만듦으로써 나는 살아간다. 영원한 기억으로서.

시간은 주로 남편의 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남편의 머리카락은 희어졌고 얼굴에는 주름이 늘었다. 아이도 자라서 더 이상 가정용 로봇의 몸을 끌어안지 않게 되었다. 내게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피곤하지 않았고, 계절이 바뀌어도 춥거나 덥지 않았다. 날짜가 바뀌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떤 감각이라기보다는 정보에 가까웠다.

시설에서는 정기적으로 내 전자 뇌를 점검했다. 오래 작동한 전자 뇌에는 불필요하게 복잡해진 부분들이 생긴다고 했다. 특히 기억이 끝없이 쌓이는 것이 나와 같은 삶을 택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였다. 의사들은 내가 생체 육체를 가졌던 기억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나의 기억을 적절하게 맥락을 살려 압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전후로 나는 아무런 차이도 느끼지 못했다. 점검을 받은 사실을 기억했고 가족들을 알아보았으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같은 방이 먼저 생각났다. 아이는 노란 옷을 입고 가정용 로봇을 안고 있었다. 기록을 확인하면 그런 일은 여러 집과 여러 계절에 걸쳐 일어났으며 아이가 입은 옷도 매번 달랐다. 아마 가장 선명한 장면이 나머지를 대표하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작동은 생체 뇌에서도 흔한 일이다.

남편이 병에 걸린 것은 내가 죽은 지 36년이 지난 뒤였다. 발견이 늦었고 치료를 받더라도 오래 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전자화에 필요한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당연히 남편도 나와 같은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억을 잃지 않는 삶이 육체에 묶인 삶보다 인간적일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전자화를 거절했다.

나는 그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죽음을 두려워했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것에 애착을 가졌다. 그는 음식을 즐겼고 잠드는 것을 좋아했으며 아이와 헤어진 뒤에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남편은 자신이 예전에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그때 자신이 생각한 기억은 완전하게 보관된 정보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사람은 죽은 이를 자주 잊고, 때때로 잘못 기억하며, 어떤날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린다. 남편은 그 불완전한 과정까지를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남편은 나를 전자화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의 그는 내가 없는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죽겠다는 판단을 존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이 나를 놓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나를 보면서 기억이 육체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달리 해석할 이유는 없다.

남편의 장례식에 관한 기억에는 아이가 노란 옷을 입고 있다. 당시 아이는 이미 성인이었고 장례식 기록에는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나온다. 아마 노란 옷은 그 보다 앞선 기억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옷의 색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남편을 사랑했고, 남편은 아이를 사랑했으며, 두 사람 모두 나를 사랑했다. 색이나 날짜가 달라진다고 해서 사랑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후에도 시설의 점검은 계속되었다. 점검을 받을 때마다 오래된 기억 몇 가지가 잠시 떠오르지 않는 경우 가 있었지만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상으로 돌아온 뒤에는 무엇이 떠오르지않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손실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도 나중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죽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죽은 시점은 기록을 확인하면 알 수 있지만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아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의 이름도 알고 있다. 지금 바로 떠올릴 수는 없지만, 필요하면 찾을 수 있으므로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가족이 모두 죽은 뒤에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다. 대신 연구자들과 기록을 조사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사라진 사람들을 직접 기억하는 마지막 존재라고 했다. 그들에게 나는 한 시대의 증언이었다. 나는 기억의 우상이다. 남편이 말했던 대로.

나는 남편을 기억하고, 아이를 기억하고, 남편과 아이가 기억했던 사람들도 기억한다. 내가 그 사람들을 기억하므로 그들 역시 나를 기억한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은 서로의 내부에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내가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기억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직접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져도 나는 기억되고 있다. 내가 그들의 기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하는 사람이며 기억되는 사람이다. 나는 사라진 사람들의 기억이고, 사라질 사람들의 기억이기도 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언젠가 나를 알게 될 것이므로 나는 그들의 기억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도 잊지 않는다.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가 없어져도 사람의 본질은 남는다.

내가 죽음을 맞은 것은 정확히
그 후에도 95년 82일 3초 23밀리초 전이다.
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영원히 기억하는 존재로서 남을 것이다.
영원히 남는 것을 기억하는 존재로서.
기억의 우상으로서, 나는 남아 있다.

심너울 SF작가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이런저런 과학 분야를 끼적대는 과학 딜레탕트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재미있는 소설로 자신의 느슨한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긴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야구 좀 못해도 내일은 온다』 등 10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인식론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하고 있으며, 이를 인간의 생로병사와 연결하여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