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 X선을 ‘읽고’ 리포트를 쓰는 AI : mvl-rrg-1.0
흉부 X선(CXR, Chest X-ray)은 병원에서 가장 많이 촬영되는 영상 검사 중 하나입니다. 폐렴, 심장비대, 흉수(폐 주변에 물이 차는 것), 기흉(폐에 공기가 새는 것) 등 다양한 질환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중요한 관문입니다. mvl-rrg-1.0은 이 영상을 입력받아 영상의학과 판독 리포트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AI 모델입니다. ‘이상이 있다/없다’를 판별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쓰이는 ‘소견(Findings)’과 ‘결론(Conclusion)’ 형식에 맞춰 구체적인 문장으로 기술하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특히 이 모델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영상 속에서 ‘시간’을 읽는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일반적인 AI 분석이 현재 찍힌 사진 한 장만 독립적으로 판단했다면, mvl-rrg-1.0은 환자의 과거 기록을 호출해 오늘찍은 사진과 비교 분석합니다. ‘지난달에 비해 흉수가 늘어났다’거나 ‘이전에 관찰되던 폐 음영이 호전되었다’는 식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는 치료 경과를 추적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매우 유효한 기능입니다.
또한, 의사가 정면(PA)과 측면(Lateral) 사진을 동시에 놓고 입체적으로 판단하듯, AI 역시 여러 각도의 정보를 통합해 정확도를 높였습니다. 실제 성능 평가에서도 기존 글로벌 최고 수준의 모델들을 상회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이전 사진과 비교해 변화를 추적하는 ‘시계열 평가’에서 mvl-rrg-1.0은 79.9%의 정확도를 기록하며, 기존 모델(54.8%) 대비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는 영상 하나를 잘 읽는 수준을 넘어 환자의 전체적인 경과를 이해하는 AI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처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AI : hari-q2.5-thinking
“60세 남성 환자가 복통과 발열을 호소합니다.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높고, 오른쪽 아랫배를 누를 때 통증이 심해지는 압통이 확인됩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받은 의사는 환자의 증상, 검사 수치, 통증부위라는 개별 단서들을 종합하여 ‘급성 충수염(맹장염)’이라는 결론을 가장 먼저 도출해낼 것입니다. hari-q2.5-thinking은 바로 이러한 의사의 ‘임상적 추론’ 과정을 수행하도록 전문적으로 훈련된 AI 언어 모델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능숙하게 지원하는 이 모델은 실제 평가에서도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국 의사 국가고시(KMLE) 수준의 문제에서 약 89%의 정답률을 기록했으며, 미국 의사 면허 시험(USMLE)에서도 88%가 넘는 정답률을 보이며 수준 높은 임상 지식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AI가 의학 용어를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복잡하게 얽힌 임상 상황 속에서 핵심 단서들을 연결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고차원적 사고 능력을 갖췄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AI는 의사의 판단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진료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든든한 ‘디지털 조력자’로 설계되었습니다. 바쁜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이 자칫 놓칠 수 있는 진단 가능성을 환기하거나 의학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며 해답을 찾아가도록 돕고 복잡한 진료 문서 작성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에서는 이 모델을 기반으로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17개 진료과별 특화 모델로 기능을 확장하며 더욱 정밀한 맞춤형 의료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AI와 의료진, 함께 여는 미래 진료의 문
현재 공개된 두 모델은 환자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비식별 처리된 공개 데이터만을 활용해 학습되었으며, 지금은 실제 임상 적용이 아닌 연구 및 교육적 목적으로 공개된 상태입니다. 의료 AI가 진료 현장에서 공식적인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 도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제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 훨씬 더 엄밀하고 까다로운 임상 검증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AI가 복잡한 영상을 읽어내고 환자의 증상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기술은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진료의 정확도를 더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의사와 AI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더욱 안전하고 정밀한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미래를 선도해 나갈 것입니다. 인간의 따뜻한 시선과 AI의 정밀한 기술이 만날 때 의료의 질은 비로소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김영곤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의료영상 담당교수(융합의학과 교수))
김영곤 교수는 의료 인공지능(Medical AI)과 컴퓨터 비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밀의료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의료 데이터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하여 실제 임상 현장에 적용하는 Medical Vision Lab(MVL)을 이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흉부 X선 판독 리포트 생성 모델 등을 공개하며 국내외 의료 AI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기술'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데이터 속에 숨겨진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이를 치료에 연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현훈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생체신호 담당교수(융합의학과 교수)
이현훈 교수는 초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임상 추론 및 지능형 의료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학적 단서들을 연결해 진단을 도출하는 ‘hari-q2.5-thinking’ 모델 개발을 주도하며, AI가 의사 국가고시 수준의 고차원적 사고를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현재 17개 진료과별 특화 모델 확장과 보험청구 자동화 시스템인 ‘Claim.AI’ 구현에 매진하고 있으며, 의료진이 행정적 부담을 덜고 본질적인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디지털 진료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