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ow
병원에는 수많은 창이 있다. 복도의 창, 병실의 창, 외래 대기실의 창. 그러나 같은 창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사물이 된다.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창은 풍경을 담는 액자에 지나지 않지만, 오랜 병상 생활 끝에 처음으로 휠체어에 앉아 창가에 다가선 노인에게 그것은 세계와의 재회를 알리는 문이다.
창(窓)이라는 한자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지붕 모양을 본떠 만든 ‘집 면(또는 ‘갓머리’, 宀)’ 아래에 ‘마음 심(心)’과 ‘창 창(囪)’이 겹쳐 있다. 집 안에 갇힌 마음이 바깥을 내다보는 통로, 그것이 창의 본뜻이다. 영어의 window 역시 고대 노르드어 vindauga, 즉 ‘바람의 눈(wind-eye)’에서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창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안과 밖을 잇는 감각의 통로로 이해되어 왔다. 벽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구조물이라면, 창은 그 보호를 유지한 채 세상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건축적 의지의 산물이다.
몇 해 전 노인병내과 병동에서 만난 여든네 살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오랫동안 심부전을 앓아온 그분은 숨이 차고 몸이 붓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병실 창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한 번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지 않았다. 커튼을 열어드리면 도리어 눈을 감았다.
“볼 것도 없는데 뭘.”
그것이 할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노인의학에서 우리는 이런 무관심을 단순한 성격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의 소실은 노쇠의 중요한 징후 중 하나이며 회복 의지의 저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창 너머의 세상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건축학자 로저 울리히는 198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유명한 연구에서 수술 후 병실 창으로 나무가 보이는 환자가 벽돌담만 보이는 환자보다 입원 기간이 짧고 진통제 사용량이 적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 연구 이후 ‘치유 환경(healing environment)’이라는 개념이 의료 건축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창이 노인 환자에게 주는 의미가 자연 경관의 치유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은 노인에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이자 계절의 변화를 전해주는 달력이며 무엇보다 ‘바깥에 여전히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이다.
할아버지의 변화는 뜻밖의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봄날 아침, 병실 창 바로 앞 목련나무에 꽃이 피었다. 간호사가 커튼을 열자 햇살과 함께 흰 꽃잎이 창 가득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고개를 돌렸다.
“어, 벌써 목련이 피었네.”
그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나는 그것이 회복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커튼을 열어달라고 했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국물 한 숟갈도 넘기기 힘들어하던 분이 반찬까지 드시게 되었다. 며칠 뒤에는 침대 난간을 붙잡고 일어나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윽고 병실 안을 천천히 걷는 운동을 스스로 시작했고, 목련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질 무렵에는 복도 끝까지 걸어 다녀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심부전 환자에게 적절한 운동과 영양은 약만큼이나 중요한 치료인데 그 동기가 처방전이 아니라 창 너머의 봄에서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노인의학을 하면서 나는 환자의 회복이 언제나 약과 수술에서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노쇠한 노인에게 회복이란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세상과의 관계를 다시 맺는 일이다. 오래 앓은 노인들은 점차 자신의 세계를 좁혀간다. 침대가 온 세상이 되고, 천장이 하늘이 된다. 그 닫힌 세계에 균열을 내는 것, 닫혔던 커튼을 여는 것, 그래서 바깥의 빛과 소리와 냄새가 다시 흘러들어오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창의 의미이고 노인 환자 회복의 첫걸음이다.
창은 벽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벽의 부정이다. 벽이 단절을 말할 때 창은 연결을 속삭인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특히 긴 투병 끝에 기력이 쇠한 노인의 곁에서 창은 가장 조용하고 겸손한 치료자가 된다. 창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 있을 뿐이다. 환자가 고개를 돌릴 준비가 되었을 때 창은 비로소 열린다. 그리고 그 순간 창은 더 이상 창이 아니라 문이 된다. 다시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위한 조용한 문.
지금도 어느 병실에서는 한 어르신이 창가에 누워 바깥을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회복은 더디고, 어떤 날은 어제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디 기억해 주시기를. 오늘 창밖의 빛 한 줌을 마주하신 그 시선이, 한 숟갈의 식사가, 침대 옆 한 걸음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회복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도약이 아니라 이런 작은 순간들이 천천히 쌓여 만들어지는 길이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시는 가족들께도 말씀드리고 싶다. 어르신의 침묵이 길어질 때, 식사가 줄어들 때,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커튼을 열어드리는 일, 창밖의 계절을 함께 이야기해 드리는 일, 그 작은 손길 하나가 우리가 처방하는 어떤 약보다 깊은 치유가 되곤 한다. 창이 늘 거기에 있듯이 회복의 가능성도 늘 거기에 있다. 다시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결코 혼자 내딛는 것이 아니다.
최정연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병내과에서 고령 환자를 진료하며 노화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인 ‘노쇠’와 ‘근감소증’을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노인포괄평가(Comprehensive Geriatric Assessment)를 바탕으로 인지 기능, 신체 기능, 우울, 일상생활 수행 능력, 약물 복용 등 노년기에 나타나는 복합적인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섬망과 낙상 등 노인 증후군 예방과 환자의 독립적인 삶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다수의 연구와 학술 활동을 통해 노인의학 분야의 임상적 기준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