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선영

사진. 박순재(Studio Cube)

병원에서 배운 것들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이한별 님은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린 시절 오랜 병원 생활을 보냈다고 하기에는 놀랄 만큼 담담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그는 2012년 소아백혈병 진단을 받고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조혈모세포이식 치료를 받았다. 치료 과정 중에는 그림 그리기 대회 상금 전액으로 보온병을 구입해 같은 병동 환아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하버드 교육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다.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표현의 즐거움을 깊이 느꼈고, 과외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자연스럽게 ‘러닝 디자인(LDIT)’ 공부로 이어졌다.
“미술을 배우며 채워지는 기쁨을 느꼈어요. 이제는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한별 님에게 병원에서의 시간은 지금의 자신을 만든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병원을 다니면서 당연하다고 믿었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학교에 가는 것, 가족과 밥 먹는 것 같은 당연한 일들이 사실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가족은 이집트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그는 아버지와 둘이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누구보다 열심히 치료를 견뎠다.
“그때는 짧더라도 다시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소중했습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시간을 채우다

어린 시절 병원은 차갑고 외로운 공간이었다.
“하얀 벽, 하얀 이불, 환자복까지 모두 하얀색이잖아요. 어릴 때는 그게 너무 무섭고 외롭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어느 순간 병원을 ‘빈 도화지’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림도 결국 하얀 도화지에서 시작하잖아요. 어느 순간 ‘내가 채울 공간이 생겼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은 지금 자신의 감정과 추억이 쌓인 시간이 되었다.
“지금 병원을 떠올리면 오래된 스케치북을 다시 펼쳐 보는 느낌이에요. 힘들었던 시간도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 당시 의료진과 가족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태도 역시 큰 힘이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도 늘 웃어 주셨어요. 같은 상황이어도 웃으면서 보내면 정말 조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시간은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잖아요.
지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4년 9월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수상했던 이한별 님의 그림

배움으로 가득한 삶을 향해

소아백혈병을 겪었던 시간은 배움을 대하는 태도도 바꿔 놓았다.
“아프기 전에는 공부가 싫었는데 병원을 오래 다니다 보니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는 병실에서 스마트폰 영상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며 ‘배움 속으로 즐겁게 들어갈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공부하려는 러닝 디자인 역시 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환아와 가족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정말 잘해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힘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좋은 날이 온다는 걸 꼭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이식 이후의 삶은 새롭게 받은 삶 같아요. 앞으로도 배움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