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부, 몸과 환경이 만나는 경계
오전 강의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온 이동훈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가 오랫동안 이어온 연구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정진호 명예교수가 콜라겐과 세포외기질 생물학을 중심으로 피부 노화 기전과 제어 분야의 연구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고, 현재의 연구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선배 연구자들에 대한 깊은 예우를 표한 그는 복잡한 인체 생물학 속에서 피부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정의를 덧붙였다.
“피부는 ‘인체와 환경이 만나는 경계면(Human-Environment Interface)’입니다. 햇빛, 공기, 스트레스, 우리가 먹는 것까지 모두 피부에 흔적을 남기죠. 그래서 피부는 우리 몸 전체 노화의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인체환경경계생물학연구소(IHEIB)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늘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같은 60세라도 어떤 사람은 40대처럼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은 70대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타고난 유전자보다는 시간이 세포에 남긴 후성유전적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부 노화 연구가 결국 ‘시간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최근 진료실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사람들이 노화를 바라보는 태도이다. 예전에는 주름이나 색소를 없애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면, 요즘은 ‘나이답게 그러나 건강하게 보이고 싶다’ 는 표현을 훨씬 자주 듣게 된다. 소위 ‘곱게 늙는다’는 것, 즉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는 기간인 ‘스킨스팬(skinspan)’을 늘려 더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 예전에는 ‘항노화’라는 표현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잘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30대 초반부터 예방적으로 피부 관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70대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관리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거든요.”
이처럼 ‘실제 나이’와 ‘피부 나이’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화를 관리 가능한 생물학적 과정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피부에 새겨진 시간의 신호
이동훈 교수는 피부 노화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하나는 시간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내인성 노화’, 다른 하나는 자외선이나 생활 습관처럼 외부 환경에 의해 가속되는 ‘외인성 노화’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피부에서 보는 주름이나 처짐, 기미의 대부분이 외인성 노화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보는 피부 노화의 약 80%는 외인성 노화이고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자외선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피부가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신호의 누적’이라고 표현했다. 자외선과 미세먼지, 스트레스 같은 외부 자극이 피부 세포의 DNA와 단백질에 작은 손상을 남기고, 그 손상이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채 후성유전적 흔적, 즉 유전자 발현 패턴의 변화로 세포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포는 어느 순간 ‘노화 세포(senescent cell)’로 전환되고, 주변에 염증성 신호를 분비하기 시작한다. 이를 ‘염증노화(inflammaging)’라고 부른다.
“결국 피부의 시간이란 손상과 복구, 실패의 작은 사이클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며 쌓인 결과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같은 50세라도 자외선 차단을 꾸준히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피부 나이는 10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피부는 몸의 시간을 비추는 창
이동훈 교수의 연구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피부 노화의 ‘후성유전학’이고, 다른 하나는 ‘피부-뇌 축(skin-brain axis)’ 연구다. 후성유전학 연구에서는 DNA 자체보다 시간이 유전자 위에 남기는 흔적에 주목한다. 메틸레이션이나 히스톤 변형 같은 변화들이 콜라겐 침묵(silencing)과 노화 세포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자 수준에서 추적하는 작업이다. 실제로 NRIP1, DNMT1, HDAC4 같은 특정 분자들이 콜라겐을 침묵시키고 노화 세포 형성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피부-뇌 축 연구는 피부가 단순히 외부 자극을 받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자외선이나 건조 같은 자극에 반응한 피부가 도파민 같은 신호 분자를 통해 뇌의 기억과 신경 생성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동물 모델에서 확인되고 있다.
“두 연구를 통해 피부가 몸의 시간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창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피부를 살피는 것이 우리 몸 전체가 함께 겪는 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피부 노화와 전신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부 노화가 심한 사람일수록 피부장벽 손상으로 인하여 만성 가려움이나 수면 장애, 우울감을 함께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광노화 정도가 심혈관 질환이나 인지 기능 저하와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피부에 축적된 당화산물(AGEs)을 피부 자가형광(skin autofluorescence)으로 측정했을 때 수치가 높을수록 심혈관 질환과 골다공증, 치매의 높은 위험과 관련이 있다는 코호트 연구들도 있다.
“피부는 전신 노화의 거울이자 삶의 질과 맞닿아 있는 중요한 장기입니다. 그래서 노화를 무조건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시간의 흔적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피부 노화 연구도 늙어가는 동안 피부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부는 매일의 습관을 기억한다
진료실에서 이동훈 교수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얼마나 치료받으면 완전히 좋아질 수 있나요?”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노화는 한 번 치료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자외선 차단을 하루 잘했다고 광노화가 멈추는 것도 아니고 시술 한 번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피부 장벽을 유지하고 충분히 보습하는 작은 습관들이 어떤 고가의 시술보다 더 큰 차이를 만듭니다. 특히 노년기 가려움증이나 만성 아토피는 ‘평생 관리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노화는 만성질환과 비슷합니다. 당뇨를 매일 관리하듯 피부도 매일 관리해야 합니다.”
그는 피부 건강을 위해 중요한 생활 습관으로 자외선 차단을 가장 먼저 꼽았다.
“흐린 날에도, 직사광선이 심한 실내에서도, 사계절 내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가장 강력한 항노화 방법입니다. 어떤 시술이나 화장품도 이를 대신할 수는 없죠. 단 3일 동안 자외선 차단제를 꾸준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자외선에 의한 후성유전학적 노화의 진행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충분한 보습 역시 중요하다. 피부 장벽이 무너지면 만성 염증과 노화 신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50대 이후에는 피부 장벽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보습 관리가 필요하다. 잠과 식사 역시 피부 노화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수면 중 피부 세포가 손상을 복구하고 채소와 과일, 생선, 올리브유 중심의 지중해식 식단이 그 과정을 돕는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은 피부 노화를 가속화합니다. 코르티솔이 만성적으로 높아지면 피부도, 뇌도 더 빨리 늙습니다. 운동과명상,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같은 작은 회복 습관도 중요합니다. 특히 흡연은 피부 노화(심한 주름)의 위험을 두 배 이상 증가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노화는 결국 시간이 몸에 새겨 넣는 글씨입니다.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글씨를 억지로 지우려 하기보다
살아온 시간을 인정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새겨갈지를 선택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
이동훈 교수는 피부 노화 연구가 앞으로 ‘정량화’와 ‘개인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후성유전 시계와 다중오믹스, 영상 기반 정량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의 ‘진짜 피부 나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만큼 ‘예방 피부과’ 개념도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년기 가려움증이나 욕창, 광노화 이후 피부암 같은 노인성 피부질환에 대비하는 의료 시스템도 더 발전해야 합니다. 또 안티에이징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제품과 마케팅을 경계해야 하죠. 검증된 활성 성분과 데이터 기반 진단, 그리고 의료, 바이오, IT가 융합된 책임 있는 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료실에서 “거울 보기가 무서워졌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는 외형 변화 때문에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에 새겨지는 시간의 흔적은 단순한 ‘늙음’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교의 대상도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여야 합니다. SNS 속 누군가나 젊은 시절의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건강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물론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받는 것은 자기 돌봄의 일부이고 그 자체로 좋은 일입니다. 외모 시술이 인생의 만족도를 올려주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반면 건강한 일상의 습관은 평생 갑니다.”
마지막으로 이동훈 교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노화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노화는 결국 시간이 우리 몸에 새겨 넣는 글씨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글씨를 억지로 지우려 하기보다 살아온 시간을 인정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새겨갈지를 선택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의사로서 제 역할은 그 글씨가 너무 거칠게 새겨지지 않도록, 환자분들이 그 흔적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시간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어떤 글이 새겨질지는 어느 정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