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 쿨럭!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사레가 걸린 듯한 이 기분은 동면관에서 몇 년을 보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우주비행사가 되는 건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광대한 우주의 탐사자.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장기 동면을 한 번 겪고 나면, 직업 안내 책자의 문구는 전부 사기처럼 보인다. 동면관 옆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하나가 헤엄치듯 날아왔다. 나보다 일찍 깨어났는지 조금 더 뽀송했다.
“인공지능이 깨웠어. 인간 거주 행성 발견이래.”
“우린 몇 년 잤는데?”
“8년. 지구 사람들은 우리보다 16년 정도 더 늙었겠지.”
“얼마 안 흘렀네.”
사람들은 탐사자가 상대성 이론 때문에 가족과 시간적으로 멀어진다는 데 경악한다. 나는 그냥 깨어 있는 것보다 잠들어 있는 게 덜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샤워를 끝내고 조종실로 갔다. 일곱 면의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행성이 떠 있었다. 지구와 닮았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푸른색을 완두콩을 먹고 토한 듯한 초록으로 바꾸고, 대지의 누런색을 검정으로 칠하고, 숲을 전부 지워버린다면.
“인간 거주 행성이라고?”
“혹은 거주했던.”
뻔했다. 수백 년 전 지구의 파종선이 닿았고, 역사 없는 아이들이 자랐고, 기술을 쌓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 수소폭탄만 한 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겠지. 감상적인 사람들은 인간의 자기파괴성이나 타나토스를 말하겠지만, 탐사자에게 이런 건 그냥 짜증나는 꽝이다.
그때 조종석에서 아르케의 목소리가 들렸다.
“행성에서 인간 조난 신호가 감지됩니다.”
나는 머리를 긁었다.
“혹시 신호기만 켜져 있고 사람들은 이미 다 죽은 거 아냐? 한 번 착륙하는 데 연료가 얼만데.”
“태영아.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이야. 세계를 찾아가고, 도와야 할 사람이 있으면 돕고. 우리가 정부 돈을 타먹는 이유가 뭐니?”
매우 맞는 말이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아, 방호복 또 입기 싫은데.
착륙은 지독했다. 대기권의 불꽃이 창을 핥고, 관성력이 8년 누워있던 몸을 짓눌렀다. 백열이 사라지자 납빛 구름이 시야를 삼켰고, 그 아래로 옛 도시의 폐허가 드러났다. 콘크리트 건물들은 녹슨 철근을 드러낸 채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거대한 가시관 같았다. 폐허라면 식물과 균류가 파고들 법도 한데 생물의 흔적은 없었다. 이 행성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실로 인간적인 존재였던 모양이다.
하나는 핵엔진을 끄고 중력자 엔진을 켰다. 우주선은 비행이라기보다 공중부양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폐허 위를 미끄러졌다. 신호는 외딴 황무지의 작은 강철 돔에서 오고 있었다. 돔은 검댕과 먼지로 덮여 있었지만 출입구 근처만은 깨끗했다. 방호복이 공기를 정화해 주는데도 입안에는 쇳가루 같은 맛이 감돌았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꾸준히 닦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르케, 통신 가능해?”
“시도하겠습니다.”
잠시 뒤 패널에서 여자아이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발음은 또렷했지만 박자가 조금 어긋나 있었다.
“방문자를 환영합니다. 신원 확인 절차를 생략합니다. 출입을 허가합니다.”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방문자는 백사십이 년 만에 처음입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하나와 나는 서로를 봤다. 일단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에어록을 지나자 안쪽은 눈이 부실 만큼 깨끗했다. 흰 조명, 회색 타일, 한 점 먼지 없는 바닥, 정돈된 케이블과 배관. 그리고 돔 중앙에는 동면관이 한 대 놓여 있었다. 캡슐 안에 한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모니터의 심박수, 호흡, 뇌파, 체온은 모두 정상이었다. 바깥에서 도시가 잿더미가 되고, 숲이 사라지고, 이 행성의 인간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이 안에서는 한 사람의 심장이 분당 오십이 회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케, 기록 뽑아 줘. 이 사람 누군지, 언제 들어갔는지.”
“해당 시설에는 생명유지 시스템 외 정보가 없습니다. 직접 깨워야 합니다.”
이런데도 사람들이 요즘 인공지능을 초지능이라고 한다니까.
“기상 절차를 시작합니다.” 동면액이 빠져나가며 안에 누운 사람의 윤곽이 또렷해졌다. 노인이었다. 캡슐이 열리자 동면액 특유의 비릿하고 단내 나는 공기가 방을 채웠다.
그리고 기침이 시작됐다.
쿨럭, 쿨럭! 쿨럭, 쿨럭, 쿨럭!
너무 잘 아는 소리였다. 노인의 마른 어깨가 들썩였고, 입가로 노란 점액질이 흘렀다. 그는 그것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상반신을 일으켰다.
“몇 년이오.”
그것이 첫 문장이었다.
“백사십이 년 하고도 칠 개월 되었습니다, 박사님.”
돔의 인공지능이 말했다. 우리는 그를 부축해 캡슐 가장자리에 앉혔다. 몸은 종이로 만든 새 같았고, 캡슐 가장자리에 앉히자 맨발 끝이 바닥에 닿지 못했다. 노인은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미아야.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미아. 아마 이 돔에 설치된 인공지능의 이름이겠지. 노인은 우리를 보았다.
“당신들은 방문해주신 분들이오?”
“그렇습니다.”
“먼 길 오셨겠소.”
“10광년쯤.”
“지구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우리의 방호복을 보며 말했다.
“옷이 굉장히 두껍구려. 우주여행에는 그런 옷을 입는가 보군.”
“그런 편입니다.”
나는 벌써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노인은 백사십 년을 훌쩍 뛰어넘고도 놀라기는커녕, 오래 기다린 택배를 받은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군. 도시 사람들일 줄 알았는데. 여기서 동쪽으로 오십 킬로미터쯤 가면 내가 살던 도시가 있소. 큰 강이 한가운데를 흐르지. 북쪽에는 내가 좋아하던 미술관도 있고. 그곳을 거쳐 오셨소?”
나는 그 거대한 가시관을 떠올렸다. 탐사자 매뉴얼에는 이런 상황이 없다. 수백 년의 동면 끝에 깨어났는데 바깥 세상이 멸망해 있는 경우.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돔 밖으로 나가면 숨도 쉴 수 없는 공기가 그를 맞을 것이다.
“어쩌다 행성 위에서 동면하셨습니까? 보통 동면은 우주 여행에 쓰이는데요.”
“아, 난 미래를 보고 싶었소. 내가 살던 시대는 노화를 막을 수도 없는 미개한 시대였지. 더 발달한 기술, 더 좋은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소. 그리고 보시오. 정말 우주에서 온 사람들이 날 일으켜줬지 않소.”
노인은 잠깐 씁쓸해졌다가 곧 다시 신이 나서 말했다.
“친구들도 같은 선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제 노화는 극복되었소? 질병도 없지요? 인간들은 평생 즐거움만 누리고 살지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예?”
“말씀하신 도시는 지나쳐 왔습니다. 저는 가시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철근이 폐허가 된 빌딩 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어서요.”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선생님이 기대한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 행성은 전쟁으로 부서졌어요. 생물 한 톨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서 미안합니다.”
하나는 팔짱을 낀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노인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미아야.”
“네, 박사님.”
“왜 일찍 깨워서 알려주지 않은 거니?”
“박사님이 동면에 드신 직후 세계 규모의 상호확증파괴적 핵전쟁이 발생했습니다. 박사님은 더 좋은 미래에 방문객이 오면 깨워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걸 명령이라고 지켰더냐!”
노인이 에어록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그를 막았다. 동면과 노화로 허약해진 노인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도 잦은 동면으로 허약하긴 매한가지지만.
“비켜주시오. 내 도시가 있다지 않소. 내 집이 있고, 강이 있고, 미술관이 있다지 않소.”
“없습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절망적인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와락 무너지듯 내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미아는 아무 소리 없이 실내 온도를 조금 올리고 조명을 낮췄다. 옛 인공지능치고는 눈치가 있었다. 아니면 백사십이 년 동안 노인의 수치를 지켜보다 그런 루틴만 남은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선생님을 구조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말했다.
“함께 우주로 가시면 됩니다. 원하시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동면시켜드릴 수 있어요.”
“지구에는 아직 사람이 있소?”
“예. 가장 번화한 세계입니다.”
“그곳도 늙고 병드는 세상이오?”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덜 그렇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곳보다는 낫습니다.”
“이곳보다는.”
노인은 그 말을 천천히 따라 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결국 미래에도 사람은 조금 덜 고장 날 뿐이군.”
“아마도요.”
“그런데 나는 그 조금 덜 고장 나는 세상을 보려고 모든 것을 두고 왔소.”
그는 동면액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아내가 있었소. 자식은 없었지. 친구들은 많았소. 가장 아끼던 친구가 죽었을 때 나는 동면을 결심했소. 그들의 죽음을 보며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무서웠소”.
“그건 죄가 아닙니다.”
“죄는 아닐지 몰라도 배신은 맞소. 나는 내 시대를 버렸소.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버렸고, 내가 증언해야 할 몰락도 버렸소. 더 좋은 미래가 보상해줄 거라 믿었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미아야.”
“네, 박사님.”
“너는 계속 여기 있었니?”
“네. 생명유지, 청소, 외벽 정비, 조난 신호 송출을 반복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예.”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도?”
“예.”
“무서웠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사님을 잃는 게 무서웠습니다. 오랜 동면을 버티셔서 기뻐요.”
노인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바라보듯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부탁이 있소. 데려가려는 마음은 고맙소. 하지만 다시 한 번 내 시대를 건너뛰고 싶지 않소.”
“여기는 선생님 시대가 아닙니다. 무덤입니다. 바깥은 방사능 황무지예요.”
“그러니 남겠소. 무덤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소.”
“구조 거부입니까?”
하나가 물었다. 목소리가 딱딱했다. 기록에 남길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의지로 이곳에 남겠소. 미아가 있지 않소. 이 돔이 미아고, 미아가 이 돔이오.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준, 내 시대의 마지막 파편이오.”
“아르케, 기록 중이지?”
“기록 중입니다. 대상자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이나 문답의 논리성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인공지능이 쓸모가 있다.
하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여벌 방호복 한 벌. 보존식량 삼십 년분. 의료 키트. 정수 필터. 통신 중계기.”
“하나야.”
“조난자를 버리는 게 아니야. 구조 거부자에게 생존 수단을 제공하는 거야.”
노인은 방호복을 입고 처음으로 돔 밖으로 나섰다. 잿빛 하늘과 검은 들판, 멀리 무너진 도시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그가 마음을 바꾸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정말로 내 세상은 쇠락했군요.”
하나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노인은 검은 들판 너머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충분히 멀리 왔소.”
그는 다시 돔으로 들어갔다. 에어록이 닫히기 전, 미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문자를 배웅합니다.”
“아니야, 미아. 이제 손님은 나다.”
잠시 정적.
“수정하겠습니다. 박사님을 환영합니다.”
문이 닫혔다.
우주선이 다시 상승했다. 하나는 중력자 엔진 출력을 낮추며 핵엔진을 가동했다. 아르케는 우리의 결정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초지능답달까.
나는 부조종석에서 투덜댔다.
“그래서 결국 바뀐 건 없잖아. 우리가 누굴 구조한 것도 아니고.”
“구조했지.”
“누구를?”
“미몽으로부터.”
아직 G-포스가 견딜 만할 때, 하나가 말했다.
“이번엔 바로 동면하지 말고 일상을 조금 즐겨 볼까.”
“우주선 안에서 놀 게 뭐가 있다고.”
“찾아보는 거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녀가 조종간을 당기자 끔찍한 관성력이 덮쳐왔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납빛 구름이 창밖으로 사라졌고, 목 안쪽에서 아주 낯익은 기침이 다시 올라왔다.
심너울 SF작가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이런저런 과학 분야를 끼적대는 과학 딜레탕트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재미있는 소설로 자신의 느슨한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긴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야구 좀 못해도 내일은 온다』 등 10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인식론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하고 있으며, 이를 인간의 생로병사와 연결하여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