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현장은 AI를 필요로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종이 없는 병원, 필름 없는 병원을 구현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 진료 현장의 의료진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 처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즉, 예전보다 확인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퇴원요약지를 작성하거나 마취 전 상태를 평가할 때 의료진들은 환자의 과거 병력과 복용 약물, 검사 결과, 수술력 등을 차례로 확인하고 정리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영상 검사를 띄워서 확인합니다. 환자분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복잡한 경우 30분까지 소요되는 과정입니다. 현재 의료진들이 상당 부분의 시간을 환자 대면보다 정보 처리에 쓰고 있다는 뜻이지요. 연구에 따르면 이 시간이 전체 업무의 절반 이상이 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제입니다.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하는 항암 치료 환자를 떠올려봅시다.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른 최적의 치료법을 제안해주는 가이드라인은 매달 바뀝니다. 이것들을 읽고 환자 맞춤형 최적 항암제를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허가 사항, 용법/용량, 주의 사항을 동시에 확인해야 하고, 건강 보험 급여 기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가끔 의료법과 행정 규정까지 더해지면,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문서와 시스템을 오가야 하는 일이 일상이 됩니다.
물론 이 시간은 환자에게 안전한 계획을 세우고 충분히 설명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기도 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이 인공지능을 고민하게 된 출발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임상적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기술이 아니라, 의료진의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입니다.
필요성에 공감한 순간, 협력이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 네이버가 디지털 바이오 연구 지원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에 300억 원 규모의 연구 기부금을 약정하면서, 병원 안팎에서 ‘의료 AI’에 대한 담론이 한층 구체화되었습니다. 이 기부금은 단지 ‘지원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이를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임상과 기술을 연결하는 도전적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저희 팀은 ‘한국형 의료 특화 초거대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 개발 및 임상응용’의 목표를 제시하였고, 해당 연구비 과제를 수주, 그 결과를 네이버-서울대학교병원 디지털·바이오 혁신 포럼 2025에서 발표했습니다. 당시 네이버 이해진 의장은 ‘의료에 진심’ 발언을 통해 서울대학교병원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서울대학교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 수준의 인적 자원과 네이버가 보유한 초거대 AI 모델 개발 역량을 결합한 협력을 통해 미래 의료를 선도할 연구 생태계 구축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공동의 목표를 가진 팀이 결성되었고 한국형 의료 특화 LLM모델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디지털 바이오와 AI 기술을 실제 의료 현장에 연결하는 연구가 가속화되었고, 이 협력의 구체적 성과 가운데 하나로 KMed.ai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개별 AI 모델 개발을 넘어,
진료 전 과정에 AI가 유기적으로 스며드는
통합 플랫폼 구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협력의 첫 결과, KMed.ai
서울대학교병원과 네이버 공동 연구진은 단순히 성능이 높은 모델이 아니라, 진료 중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기준과 근거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줄 수 있는 기능에 집중했습니다. 회의는 매주 종로와 판교를 오가며 대부분 밤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은 실제 임상에서 마주하는 질문을 꺼내 놓았고, 네이버 개발팀은 그러한 질문에 의료 현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답할 수 있는 AI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고 학습시켜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의료진들의 언어와 개발자들의 언어는 달랐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LLM 모델을 만들자”는 목표는 같았습니다. 그렇게 임상과 기술이 반복적으로 부딪히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KMed.ai입니다.
현재 KMed.ai는 의료진이 주로 하는 질문에 대해, 흩어져 있는 정보를 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짧은 시술에서 사용하는 진정제의 적정 용량을 확인해야 할 때, 허가 사항과 용법/용량, 주의 사항을 함께 정리해 보여주고, 특정 항암제를 처방할 때는 최신 가이드라인과 급여 기준을 나란히 제시합니다. 마약류 보고나 의료법과 관련된 행정적 질문에서도 관련 조항을 구조화해 제공함으로써, 의료진이 여러 문서와 시스템을 오가며 확인하던 과정을 줄여줍니다.
의료 인공지능에 있어 근거에 기반한 투명한 답변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현 시점에서 의료에서 최종 판단의 책임은 언제나 의료진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KMed.ai는 그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조건과 기준을 빠짐없이 정리해, 의료진의 결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병원의 AI를 하나로 잇는 플랫폼, SNUH.AI
서울대학교병원에서의 AI 활용은 개별 모델을 만들거나 도입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영상 판독, 생체 신호 분석, 의료 문서 작성 등 여러 영역에서 AI가 활용되어 왔지만, 이러한 기술들은 각각 따로 작동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 진료는 하나의 연속된 흐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AI는 공기처럼 끊김 없이 진료 현장에 스며들어야 합니다.이러한 문제의식에서 SNUH.AI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SNUH.AI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개발·활용되는 여러 AI 에이전트와 데이터, 업무 흐름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입니다. 특정 AI 모델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진료 과정에 쓰이는 AI들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체계에 가깝습니다. KMed.ai는 이 구조 안에서 의료 지식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핵심 생성형 AI로 작동하며, 이를 기반으로 진료 기록 요약, 처방 및 검사 검토, 기준 확인 등 다양한 업무 지원 기능이 연결됩니다.
이러한 플랫폼과 AI 모델들 간의 유기적 결합은 의료진 업무 효율 증가를 넘어, 환자 경험의 개선으로 이어집니다. 의료진이 여러 시스템과 문서를 오가며 정보를 확인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환자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이를테면 간호사들이 약품을 식별하는 과정과 의료진의 진료 기록, 검사 결과, 치료 기준까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정리되면 환자의 상태 변화도 보다 일관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AI가 판단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가 빠짐없이 정리됨으로써 진료의 안전성과 연속성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함께 만드는 미래, 서울대학교병원의 AI 비전
급격한 AI 기술의 발전은 의료 분야에서도 단순 기술 도입을 넘어선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 중심에서 SNUH.AI는 병원 안의 다양한 AI를 하나로 잇고, KMed.ai는 의료 지식을 책임지는 구조를 통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전 인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서울대학교병원의 미션에 부합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병원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28일, 서울대학교병원은
네이버와 ‘Medical AGI 행사(MAGIC)’를 열고
의료 특화 대형언어모델(LLM) ‘KMed.ai’를 발표했다.
이형철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데이터 사이언스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미래 의료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해왔다. 서울대학교병원 데이터사이언스연구부장을 거쳐 현재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으로서 한국형 의료 특화 초거대 언어모델(LLM)인 ‘KMed.ai’와 통합 AI 플랫폼 ‘SNUH.AI’의 개발 및 임상 응용을 총괄하고 있다. 네이버와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의료 현장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구축에 주력해왔으며, 2025년 의사 국가고시(KMLE)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며 KMed.ai의 독보적인 성능을 입증했다. 현재 인공지능이 의료진의 판단을 정교하게 보조하고 환자에게 진료의 온기를 되돌려주는 ‘공기처럼 스며드는 AI’ 환경 조성과 글로벌 의료 AI 생태계 구축에 전념하고 있다.
이현훈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기술연구센터 담당교수(융합의학과 교수)
2020년부터 의료 자연어처리 연구를 시작해, 임상 데이터와 언어모델을 결합한 의료 인공지능 연구를 수행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에서 생체신호 인공지능 분야를 담당하며, 국가전략기술특화연구소 데이터혁신센터 담당교수로서 원내외 연구자들의 의료데이터 플랫폼을 활용한 인공지능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헬스케어AI연구원 내 의료 인공지능 프로젝트에서 구현과 적용을 중심으로, 생체신호·의무기록·임상 지식 및 가이드라인을 통합한 AI 시스템 개발을 맡고 있다. 특히 의료 초거대언어모델과 에이전트 기반 임상 지원 기술을 실제 진료 환경에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보험청구 기준 해석과 근거 기반 질의응답을 자동화하는 ‘Claim.AI’ 개발도 주도하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정보 처리 과정을 줄이고, 의료진이 보다 본질적인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인공지능 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