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예은

사진. 황필주(79Studio)

산모의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는 힘

저출생 시대와 함께 ‘두 개의 심장’을 감당해야 하는 이승미 교수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산모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며 임신성 당뇨, 임신성 고혈압도 늘었고 기존 질환을 가진 산모가 많아진 것이다. 고령 산모는 임신 과정과 출산 결과에 대한 절박함과 부담감이 남다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이승미 교수를 만난다. 그 두려움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만은 아닐지 모른다. 더 많은 시간을 겪으며 보고 들은 말이 두려움을 더해서가 아닐까. 이승미 교수의 원칙은 산모와 가족의 의견이다. 결코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승미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은 그들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도록 도울 뿐이다.

생명의 문턱에서 다짐한 의사의 길

이승미 교수가 산모의 안전을 기하는 산부인과 중에서도 고위험 임신, 태아 치료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인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턴 시절 루푸스 환자가 분만 후 회복 단계에서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가게 됐어요. 굉장히 많은 의료진이 그분을 위해 노력했죠.” 이승미 ‘인턴’은 두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을 합치고, 끝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먹었다. ‘위험한 순간, 그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자.’ 그 시절의 다짐은 지금의 길을 걷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태아 치료는 보통 아기가 태어난 후에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떤 아기들은 ‘지금 이 순간’에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상태가 악화된다. “그 시기를 잘 넘기면 태어난 후 아기들이 건강한 경우가 많아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치료한 아이를 다시 만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이승미 교수가 환히 웃었다. “아뇨. 그런 일은 없죠.” 그 웃음 너머에서 다시 만나지 못해서 좋다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기적을 만드는 마지막 1분의 끈기

이승미 교수의 굳건한 신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승미 교수는 전임의 시절을 회고했다. “뇌출혈을 일으켜 신경외과 수술을 받은 임신중독증 환자가 있었어요.” 환자는 수술 이후에도 재출혈이 이어져 시간마다 혈액을 한두 팩씩 수혈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재수술이 필요했지만 검사 수치가 좋지 않아 수술을 할 수 없었다. 하나, 둘 포기하려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이승미 전임의는 전공의에게 말했다. “너랑 내가 이 사람을 포기하면 이 사람은 끝이야.” 두 사람은 이 환자를 재수술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다. 매시간마다 피 검사를 진행했고 검사 수치가 안정된 순간 신경외과에 재수술을 요청했다. 10일 뒤 그 환자는 두 발로 걸어 병원을 나섰다. 이승미 교수의 마음가짐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 파수꾼’이 되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탄생은 한 가족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산모에게 아기를 안겨줄 때마다 이들에게
펼쳐질 행복한 시간을 상상하곤 하죠.
그 귀한 만남의 순간까지 산모가 지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 믿습니다.”

데이터로 안전한 출산을 설계하다

이승미 교수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진심인 만큼 인공지능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이승미 교수가 인공지능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 발짝’이다. “저는 인공지능이 의료진의 판단을 대신하기 보다 한 발짝 먼저 예측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미 교수는 수술 중 대량 수혈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사용하며 그 가치를 크게 느꼈다. 해당 모델을 설계할 당시에는 10분 후 상황을 예측하도록 했다. 사용해보니 20~30분 전에 출혈을 예측해낼 만큼 기대 이상이었다. 덕분에 의료진은 혈액을 준비하고, 추가 의료진을 호출하는 등 응급 상황을 대비할 수 있었다. 자칫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량 출혈을 사전에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수술을 보다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승미 교수는 여성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 특히 산모가 분만하는 과정에서 잘못되는 일을 안타깝게 여긴다. 자신을 찾아올 수 없는 산모들에게도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보라매병원에서 근무하던 이승미 교수는 미혼모 단체에 연락해 주기적으로 정밀 초음파를 보는 등 병원의 문턱을 넘기 힘든 이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봉사활동을 이어갈수록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사업 형태로 만들어 MOU(업무 협약)를 맺고 조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접근했습니다.” 그렇게 이승미 교수는 보라매병원에 소중한 씨앗을 심었다. 그 씨앗이 자랐던 토양, 보라매 병원에서는 현재 여성장애인 모성보건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이승미 교수 역시 여느 산모와 다를 것 없는 고민을 겪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산모에게 아기를 안겨줄 때 ‘이 사람에게 앞으로 얼마나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탄생은 가족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기를 만나면 행복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까지만 조금 버티시면 됩니다.” 인터뷰 내내 담담하던 이승미 교수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책상 위에 놓여있던 이승미 교수의 아이가 그렸다는 그림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