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선영

사진. 황필주(79Studio)

평균이라는 잣대가 가두는 생명의 가능성

박혜준 서울대학교 교수는 탄생이라는 사건을 거창한 수식어로 치장하지 않는다. 그에게 탄생이란 한 존재가 세상에 도착하기 시작하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인 동시에 인류 공통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시작 때문에 그는 탄생을 설명할 때 언제나 ‘환대’라는 단어를 중심에 둔다.
“스스로 원해서 온 삶이 아닌 만큼, ‘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기다림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요. 더구나 아이의 탄생은 독립된 생명체의 출현을 넘어 부모와 형제 그리고 지역사회를 새로운 관계로 묶어주는 강력한 연결 고리가 됩니다. 우리 모두를 서로에게 책임 있는 존재로 변화시키죠.” 하지만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정상성(normalcy)’이라는 이름의 환상과 마주하게 된다. 또래보다 빠르거나 느리지는 않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행동이 정상 혹은 평균이라는 기준에 맞는지 등의 잣대 위에서 평가받는다. 박혜준 교수는 그 기준이 생각보다 훨씬 불완전하고 취약하다고 강조한다.
“ 누구나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라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 차이를 그대로 두지 않죠. 분류하고, 이름 붙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순서를 매겨요. 평균과 다를 경우 개성이라는 단어 대신 장애나 결함이라고 불러요. 문제는 이런 차이가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곧 경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정한 정상의 범주는 결국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만들고 어떤 아이들을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내고 만다. 박혜준 교수는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행위는 우리가 믿어온 견고한 기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양육, 아이와 부모가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일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삶의 현장에서 부모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흔히 어른이 아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키운다고 믿지만, 박혜준 교수는 ‘양육이란 서로의 세계가 부딪히며 함께 변화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정의한다. 타인을 돌보는 행위는 곧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거울이 되며 특히 예상치 못한 고난을 마주할 때 부모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숙의 단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깨닫게 됩니다. 자녀에게 투영했던 자신의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마주하는 순간 부모의 세계가 확장되죠. 그 아이 덕분에 내가 더 강해졌다고 고백하는 부모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 인간다운 삶의 첫걸음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환대, 아닐까요?
각자의 취약함을 인정하며 기꺼이 서로의 우산이 되어줄 때,
아이와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양육은 한 사람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지만 그 과정이 늘 평온할 수는 없다. 그중 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한 어머니가 박혜준 교수에게 전한 고백은 이 고단한 여정의 본질을 꿰뚫는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마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일’과 같다는 표현이었다. 박혜준 교수는 쏟아지는 비를 인위적으로 멈추게 할 방법은 없으니, 그 빗속을 누구와 함께 걸어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일은 결코 부모의 헌신이나 한 가정의 고군분투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도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줄 이웃과 사회가 있을 때 비로소 양육은 고립된 투쟁이 아닌 존엄한 삶의 과정이 되죠. 우리 사회가 이들을 위해 기꺼이 함께 젖을 준비가 된 튼튼한 우산이자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한 아이의 성장은 여러 사람의 손길과 제도가 함께 떠받치는 구조 속에서 완성된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촘촘한 관계망이 작동할 때 아이와 부모는 그 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비를 맞으며 걷는 길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만 지워진 형벌이 아니라 공동체가 얼마나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연대의 현장이 된다는 뜻이다.

안전하게 실패할 권리, 돌봄으로 맺는 약속

공동체가 연대한다 해도 아이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또 있다.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자유다. 박혜준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가 보호라는 명목 아래 아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너무 성급히 치워주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성장이란 본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행착오를 통해 단단해지는 과정인데, 아이들이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혜준 교수가 학교를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실험실로 정의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은 아이들이 실수하며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실패해도 괜찮은 이유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누군가 나를 붙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용기 있게 성장합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모두 돌봄 속에 있듯 타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서로의 실패에 더욱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박혜준 교수의 시선은 삶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는 본질에 닿아 있다. 그러므로 아이가 세상에 온다는 것은 생명의 탄생을 넘어, 돌봄을 주고받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작을 조건 없이 반기는 환대는 아이 한 명을 향한 선의를 넘어, 우리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지탱해 나갈 것인지 보여주는 실질적인 약속이다. 우리가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서로의 우산이 되어줄 때,아이와 공동체는 비로소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박혜준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

장애 아동 가족과 다양한 아동의 삶을 통해 인간관계와 성장의 의미를 탐구해 왔다. 논문 「내 아이가 나를 키워준다」를 통해 양육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관계로 설명했으며, 여러 연구들을 통해 정상성과 차이에 대한 사회적 질문을 던졌다. 현재 서울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장으로서 상호의존적 공동체와 포용적 교육 환경을 만드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