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영웅을 쓰러뜨린 만성 폐쇄성 폐질환
“장수와 번영이 있기를(Live long and prosper, LLAP)!” 1966년 첫 방영한 미국 SF 드라마 시리즈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Star Trek: The Original Series)>에서 레너드 니모이(Leonard Nimoy)가 연기한 스팍(Spock)의 대사다. 스팍은 뾰족한 귀를 가진 외계 종족 발칸인(Vulcan)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캐릭터다. 감정을 철저히 억제하고 논리와 이성만으로 판단하는 발칸인의 특성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뛰어난 분석 능력으로 엔터프라이즈호(USS Enterprise) 동료와 인류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스타트렉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냉철한 영웅’인 스팍을 연기한 레너드 니모이가 현실 세계에서는 약 37년간 피워온 담배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오랜 흡연이 손상시킨 폐는 회복 불능 상태가 되었고 결국 만성 폐쇄성 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으로 2015년 2월 27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이다.
말기 폐질환의 최후 치료법, 폐이식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기도와 폐 조직의 염증 및 손상으로 공기 흐름에 문제가 생겨 호흡곤란, 잦은 기침, 가래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흡연이 주된 원인으로, 흡연 이력이 있다면 금연 후에도 발병할 수 있다. 한편 제한성 폐질환은 폐 조직 자체가 딱딱해지는 것이 특징이며, 폐섬유증이 대표적이다. 2023년 미국 장기 조달 및 이식 네트워크(OPTN/SRTR)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폐이식 환자의 약 83%가 이 두 가지 폐질환을 앓고 있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과 제한성 폐질환이 말기까지 진행되면 약물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폐이식이 최후의 치료법으로 권고된다.
문제는 폐를 이식하기 위해 가슴을 크게 열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양쪽 폐를 모두 이식할 경우, 한쪽 겨드랑이부터 반대쪽 겨드랑이까지 흉골을 절개해 흉부 중앙을 전부 열어야 한다. 조개껍데기가 열려 속살이 드러나는 모양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클램셸(clamshell)’이라고 불린다. 이 방식은 폐에 접근하기 쉽지만 흉골 감염과 관련된 합병증 위험이 높고, 통증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폐이식 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학자들이 절개 부위 최소화를 고심해 온 이유다.
최소 침습을 향한 끝없는 도전
세계 최초로 로봇 폐이식에 성공한 곳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사이나이(Cedars-Sinai) 메디컬센터다. 이 병원은 대규모 개흉 방식인 클램셸 대신 작은 절개만으로 폐이식을 하는 최소 침습 기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의사가 손으로 복잡한 혈관과 기도를 연결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료진은 다빈치(da Vinci) 로봇 수술 시스템을 도입했다.
로봇 폐이식의 세 가지 장점 때문이다. 첫째, 로봇 팔에 탑재된 특수 손목은 인간의 손보다 작동 범위가 넓어 곡선과 직선이 복합된 장기 구조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최적의 봉합을 위해서는 조직에 대해 정확히 45도 또는 90도 각도로 바늘을 삽입해야 하는데, 로봇 팔이 이를 정밀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둘째, 고해상도 3D 영상으로 실시간 수술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영상 보조 흉강경 수술(Video-Assisted Thoracoscopic Surgery, VATS)도 시각화할 수 있지만 2D 기반이라 혈관 연결 같은 복잡한 수술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3D 고해상도 영상은 바늘의 깊이와 각도를 훨씬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의사가 인체공학적으로 편한 자세로 수술할 수 있다. 기존에는 환자가 누운 침상 옆에 서서 수술해야 했지만, 로봇 수술은 콘솔에 앉아 조종하며 진행하는 데다 손 떨림을 자동으로 보정해 더욱 정밀하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다. 이러한 로봇의 장점을 활용해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센터 의료진은 2023년, 69세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에게 로봇 폐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6cm의 주 절개부를 통해 손상된 폐를 제거하고 공여자의 폐를 이식한 것이다. 환자는 수술 후 11일 만에 퇴원했고 18개월 동안 특별한 문제 없이 회복했다. 로봇 폐이식의 시대가 열린 순간이었다.
서울대학교병원, 국내 최초 로봇 폐이식 성공 로봇 폐이식은 병원 전체의 협력 시스템과 축적된 경험이 필요한 고난도 수술이다. 특히 서구형 체형에 최적화된 로봇 시스템을 좁은 흉곽 구조를 가진 한국인에게 적용하려면, 수술 부위 접근 경로부터 로봇 팔 조작 범위까지 모든 과정을 재설계해야 한다. 서울대학교병원은 2025년 6월, 폐섬유증으로 중증 호흡곤란을 앓아온 66세 환자에게 국내 최초 로봇 폐이식을 시행해 성공했다. 8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다빈치 로봇으로 손상된 폐를 제거하고 기증받은 폐를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환자는 현재 산소 공급 없이도 자연스러운 호흡이 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 중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은 다학제 협진과 풍부한 장기이식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말기 폐질환 환자들에게 로봇 폐이식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좁은 흉곽의 한계를 극복하다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2025년 6월,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이 국내 최초로 로봇 폐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전 세계적으로 소수의 병원에서만 시행할 수 있는 고난도 수술 성공으로 국내 말기 폐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이번 사례는 특히 좁은 흉곽 구조를 가진 한국인 환자에게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반적으로 로봇 폐이식은 서구형 체형에 최적화된 기술로, 체구가 작은 동양인에게는 수술 부위 접근이 어렵고 로봇 팔 조작이 제한적이어서 까다로운 시도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은 약 8시간에 걸쳐 다빈치 로봇으로 손상된 폐를 제거하고 기증받은 폐를 이식했다. 심장혈관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수술간호과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협력해 이룬 성과다. 수술을 집도한 심장혈관흉부외과 박샘이나 교수는 “체구가 작은 환자에게도 최소 침습 로봇을 활용해 정밀한 폐이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중요한 사례”라고 밝혔다. 폐이식 외에는 치료법이 없는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말기 폐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영웅의 유산, 의료진의 도전
로봇 수술을 받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면, 레너드 니모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만성 폐쇄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80세가 넘었지만 스타트렉 시즌 2 에피소드 <면역 증후군(The Immunity Syndrome, 1968)>의 스팍처럼 멋지게 말년을 맞았을 것 같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스팍은 거대 아메바 생명체와의 전투에서 셔틀크래프트를 타고 위험을 무릅쓰고 내부로 진입해 중요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 정보 덕분에 엔터프라이즈호는 은하계를 구할 수 있었다. 로봇 폐이식으로 새 생명을 얻은 레너드 니모이 역시 손을 들어 “장수와 번영이 있기를!”을 외치며 말기 폐질환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메신저가 되었을 것이다. 스팍이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생명체를 탐험했듯, 의료진의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은 오늘도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레너드 니모이(Leonard Nimoy)가 연기한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스팍(Spock)
살덩이_FUNKY SCIENCE, 바이오/헬스케어 콘텐츠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에서 분자면역학,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Science communication and public engagement를 전공했다. 직접 그린 캐릭터로 생명과학 기반의 여러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원리를 ‘할아버지’ ‘할머니’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바이오/헬스케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