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지선 칼럼니스트

공공성에 전문성을 더하다. 카롤린스카 대학병원

긴 겨울이 이어지는 북유럽의 나라, 스웨덴에서 햇빛은 그 무엇보다 귀한 자원이다. 그래서일까,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의 병동은 단 한 줄기의 자연광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햇살이 잘 닿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커다란 창을 통해 누구에게나 공평한 빛이 병동 구석구석을 채운다. 그 빛은 이 병원의 철학을 닮아 있다.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은 모든 환자가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공공의료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 의미는 단순한 균등 서비스 제공을 넘어선다. 연구와 임상을 통합하고 필수 의료를 강화하며 환자 중심의 시스템 개혁으로 ‘공공성’에 ‘전문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의료복지 선진국 스웨덴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카롤린스카 대학병원 공식 개원은 1940년이지만 그 뿌리는 18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카롤린스카 연구소와 병원은 긴밀히 협력해 최신 연구 성과를 빠르게 임상 치료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북유럽 최대 규모이자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5대 병원’에 이름을 올린 카롤린스카의 전문성은 어느 정도일까. 그 해답은 스웨덴의 국가 제도 NHV(Nationell höögspecialiserad våård)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제도는 희귀하거나 고난도 질환의 치료를 최대 다섯 곳의 기관으로 집중시켜 전문성을 높이는 국가 정책이다. 카롤린스카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중앙화 라이선스를 보유한 병원 중 하나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DSD(성분화 이상), EXIT procedure(자궁 외 분만 중 치료), Fosterterapi(태아 치료) 등 A부터 Z까지 세분화된 고난도 진료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특히 간 이식 수술 분야에서의 성과는 탁월하다. 1984년 스웨덴 최초로 간 이식 수술에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2,000건이 넘는 수술을 시행했다. 성인뿐 아니라 소아 환자에게도 이식 치료를 제공하며 혈우병·HIV·가족성 아밀로이드 신경병증·간세포암 등 복합 질환에서도 탁월한 치료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공공의료의 모델

공공의료는 무엇보다 ‘위기’에 강해야 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 앞에서도 누구나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원칙을 가장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 곳이 바로 카롤린스카 외상센터(Trauma Center Karolinska, TCK)다. 스웨덴 최대 규모의 중증 외상센터인 이곳은 성인부터 소아까지 아우르는 심각한 외상 환자를 치료한다. 스웨덴에서 외상은 44세 이하 인구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히며, 매년 약 1,400건의 외상 환자가 접수되고 그중 약 350건이 중증이다. 카롤린스카는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 초기 개입을 강화해 외상의 장기적 후유증을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 위기 대응의 철학’은 일상의 응급 현장을 넘어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던 2021년, 카롤린스카 병원은 210만 건이 넘는 PCR 검사를 수행하며 스웨덴 방역의 중추 역할을 했다. 임상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실시간으로 치료에 반영해 팬데믹 대응의 최전선에서 공공의료의 진정한 가치를 증명했다.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병원은 높은 진료 생산성과 체계적인 운영으로 2년 연속 의료서비스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고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2024년에도 지역이 위탁한 진료량의 106%를 수행하며 5년 연속 목표를 넘어섰다. 이런 위기 대응의 성과는 카롤린스카가 단기적인 효율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병원은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지역사회와 조직의 동반 성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모두에게 평등한 의료 접근을 보장하고 인권·성평등·아동권리 등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며 지역 사회의 신뢰를 쌓아왔다. 또한 환경경영과 재정 안정화를 통해 연구·운영·재정이 선순환하는 병원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카롤린스카의 사례는 공공의료의 지속가능성이 단순한 재정 자립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 위에 세워진 공공성의 확장임을 보여준다.

연연구구와 임와 임상상을을 하나로 묶고,
공공의료 안에서 중증·희귀질환까지
책임지는 카롤린스카는 ‘모두를 위한 의료’가
어떻게 지속가능한지를 제시하는 살아있는 모델이다.

환자 중심의 시스템 개혁, 뉴 카롤린스카 솔나

2018년, 카롤린스카 병원은 또 하나의 의료 역사를 썼다. 새롭게 문을 연 뉴 카롤린스카 솔나(New Karolinska Solna, NKS)의 병실을 100% 1인실로 설계한 것이다. 단순한 건축 혁신이 아니라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하기 위한 철학의 결정체였다. 하나의 병실에는 침대 하나와 화장실 하나, 그리고 한 명의 환자를 위한 온전한 공간만이 존재한다. 이 단순한 구조는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안전과 사생활을 완벽에 가깝게 보호한다. 환자는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환자 플로 캡틴(Patient Flow Captain)’ 과 1대 1로 연결되어 진료의 전 과정을 함께한다. 진료가 ‘절차’가 아니라 ‘동행’이 되는 순간이다.카롤린스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기존의 내· 외과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암·심혈관질환·감염병· 고령질환·여성·아동·신경질환 등 7개 분야로 나눈 테마 치료(Theme-based Care)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협진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이처럼 한발 앞선 시스템 덕분에 뉴 카롤린스카 솔나는 의료의 미래를 현실로 구현한 병원으로 불린다. 그들의 노력 앞에서는 ‘공공의료는 균등하지만 평준화된 서비스에 머문다’는 편견이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물론 북유럽의 공공의료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병상 부족, 긴 대기 시간, 지역 간 접근성 문제 등 현실의 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웨덴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은 공공성과 전문성, 그리고 환자 중심 혁신을 동시에 실현하며 의료의 본질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카롤린스카의 사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공공의료라는 단어가 통계나 제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 사람의 환자가 단순한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와 돌봄, 제도와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공공의료의 새로운 모델을 찾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어쩌면 그리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료는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두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 단순한 진실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다.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학교병원이 카롤린스카의 철학과 실행을 참고하여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향한 비전을 함께 그려가길 바란다.

about Karolinska Universitetssjukhuset
  • 설립 연도 1940
  • 위치 스웨덴 스톡홀름 카운티, Solna 캠퍼스(북쪽)와 Huddinge 캠퍼스(남쪽)
  • 평균 병상 수 1,059병상
  • 의료 인력16,000
  • 중증 및 희귀 질환
    치료 중심 기관
    스웨덴 전국 고난도 전문진료를 맡는 핵심 대학병원으로, 장기이식· 암·희귀 유전질환 등 가장 복잡한 중증 환자를 다학제 팀으로 치료하는 국가 레퍼런스 센터 역할을 수행
  • 전문·중증 의료
    (highly specialized care)
    담당 핵심 병원
  • 스웨덴 공공의료 (Region Stockholm)의 핵심 거점 세금 기반 보편적 의료체계 안에서 중증·희귀질환 고도 전문진료를 담당. 카롤린스카 의대(Karolinska Institutet, KI)와 연계해 연구·교육·임상시험을 통합한 국가적 공공의료· 정밀의료 허브 역할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