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 치료의 지평을 넓혀가다
이은영 서울대학교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희귀·난치성 류마티스 질환에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개척하는 연구자다. 그는 강직성 척추염, 염증성 근육염, 간질성 폐질환을 동반한 류마티스 질환 등 치료가 쉽지 않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코호트 연구와 중개 연구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바이오마커와 새로운 치료 타깃을 밝혀내며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대한류마티스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2025년 대한류마티스학술상’을 수상한 것도 이러한 연구 성과의 결실이었다. 이은영 교수는 이번 수상으로 자신이 걸어온 연구 방향에 확신을 얻고, 앞으로의 연구에 힘을 보태는 계기로 삼았다. 그는 지금도 환자 곁에서, 그리고 연구실에서 더정밀한 진단과 맞춤 치료를 향한 도전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A.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EMR에 접속합니다. 두 대의 컴퓨터 중 왼쪽은 환자를보는 용도이고, 오른쪽은 나머지 다른 업무들을 처리하는 용도인데요, 왼쪽 컴퓨터를 먼저 켜서 밤사이 입원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몇 개의 컨설트(타과 의뢰)가 와 있는지 살펴봅니다. 외래가 있는 날에는 외래 환자들에 대한 스크리닝도 해두고요. 그다음은 오른쪽 컴퓨터에서 이메일 체크도 하고,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정리합니다. 회진을 매일 돌기는 하지만, 이렇게 EMR을 통해서도 수시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상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항상 꼼꼼히 살핍니다.

A. 눈에 보이는 장기를 다루는 다른 내과와 달리, 류마티스내과는 만성 염증성 전신 질환을 다루는 분야라서 더 모호하고 복잡합니다. 어떤 면역세포가 어디로 가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직접 들여다볼 수 없으니 상상력과 통찰력이 필요하고요. 그 점이 오히려 흥미로웠습니다. 피부부터 장기까지 전신을 모두 살펴야 하는 특성도 매력적이었고요. 또 하나의 매력은 아직도 밝혀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자가면역 질환은 종류도 무척 다양하고, 원인조차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질환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희귀 질환을 발굴하고 진단하며 치료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늘 배움과 도전이 따릅니다. 치료에 반응이 좋아서 환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이 분야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듭니다.


A. 기억에 남는 환자분들이 참 많은데요, 어제 왔던 환자 중 고등학생 시절 근육염이 발병해 잘 걷지 못했던 20대 환자가 있습니다. 입원 치료를 하며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후 다시 상태가 많이 나빠져 한동안 앉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 있어야 했어요. 오랜 기간 입원 치료와 재활을 거치며 휠체어에 의지해 지냈는데, 어제는 걸어서 진료를 받으러 왔더라고요. 그걸 본 순간 저도 너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환자 어머님이 직접 손편지도 주셨어요. 이처럼 환자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며 환자가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저도 힘이 나곤 합니다.

A. 저희 자가면역 연구실은 보통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입니다. 연구실 구성원인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이 참여해 각자 진행 중인 데이터를 공유하고, 최신 논문을 함께 리뷰하기도 하고, 최신 트렌드 중 연구에 응용할 만한 부분을 함께 논의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대학에서 교수로 자리 잡은 제자들이 함께 원격으로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각자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제가 어떤 부분을 도와주면 되는지 의논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연구 방향을 점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A.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희귀·난치성 자가면역 질환 환자의 약물 반응성을 미리 예측하는 연구입니다. 강직성 척추염, 염증성 근육염, IgG4 연관 질환 같은 환자군에서 혈액을 채취해 면역세포 변화를 분석하고,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이 효과가 있을지 바이오마커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단순히 약을 써보고 반응을 확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사전에 선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죠. 이런 연구가 쌓이면 환자에게 불필요한 실패를 줄이고,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목표는 면역세포의 정밀한 변화를 관찰해 치료의 기전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정 표적을 겨냥한 약을 썼을 때 다른 면역세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단순하고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고, 나아가 질환이 왜 생기는지 그 원인 기전을 규명해 새로운 치료 타깃을 발굴하는 것이 제 연구의 또 다른 축입니다.

A. 사실 이번 상은 제가 7~8년간 여러 병원과 함께 꾸준히 이어온 코호트 연구의 결과물을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걸어온 연구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게 된 순간이었고, 앞으로도 더 도전적인 연구를 이어가야겠다는 용기를 준 계기였습니다. 특히 환자의 임상 정보와 혈액에서 얻은 바이오마커 데이터를 연결하는 중개 연구는 아직 국내에서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번 수상을 통해 그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를 발전시켜 환자들에게 더 나은 진단과 치료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A. 저는 무엇보다 보여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환자를 어떻게 보고, 어떤 기준으로 치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옆에서 직접 보는 게 큰 배움이 됩니다. 그래서 전공의나 학생들에게는 여러 교수들의 장점을 보고 본인만의 진료 스타일을 만들어가라고 늘 조언합니다. 연구에 대해서는 끝까지 해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작은 주제라도 완결을 지어봐야 다음 연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해도 좋으니 하나를 끝까지 해보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고, 그것이 결국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A. 회진은 단순히 환자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환자가 왜 입원했는지, 어떤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지, 앞으로 단기·장기 치료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를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원 환자의 경우 대부분 외래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환자의 과거 진료 기록을 다시 살펴보고 그 히스토리를 환자와 함께 점검합니다. “이전에는 이런 치료를 했고, 지금은 이런 변화가 있으니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가겠습니다”라고 설명해 드리죠. 환자 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데, 치료 계획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면 안정감을 얻고 외래 진료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치료와 연구, 두 길 끝에 남기고 싶은 발자취
이은영 교수의 하루는 진료와 연구로 쉼 없이 흘러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 바로 환자들이 질환을 안고도
‘질환이 없는 사람처럼’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진료를 넘어, 앞으로 5년, 10년 뒤 환자들에게 근거가 되어줄 연구를 묵묵히 이어간다.
“제가 한 연구가 작은 족적이라도 남아, 후배 의사들이 더 확신을 갖고 진료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환자들에게는 삶의 희망을 지켜준 의사로, 후배들에게는 끝까지 버티며 길을 열어준 연구자로 남고 싶은 이은영 교수. 오늘도 그는 진료실과 연구실을 오가며, 환자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넓게 만들어주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희귀·난치성 류마티스 질환과 자가면역 질환을 중심으로 환자 코호트 기반 연구와 중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강직성 척추염, 염증성 근육염, 간질성 폐질환 동반 류마티스 질환 등 복잡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바이오마커와 치료 타깃을 규명하며 맞춤형 치료의 근거를 마련해왔다. 이러한 성과로 2025년 대한류마티스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도 정밀 진단과 맞춤 치료를 향한 연구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