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하영

사진. 김정호

Harvard Medical School

연구와 교육, 두 축으로 설계된 협력

서울대학교병원은 국가전략기술 특화연구소의 국제공동연구협력사업의 일환으로 ‘SNUH-SNUCM-HMS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서울대학교병원(SNUH), 서울대의과대학(SNUCM), 하버드의과대학(HMS)이 3자 협약을 맺은 이번 사업은 단순한 기관 간 교류를 넘어, 국가 전략과 글로벌 연구의 흐름이 맞물리며 탄생했다. 2023년 보스턴 방문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되어, 2024년 서울대학교병원이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전략기술 특화연구소로 지정되면서 본격화되었다.
현재 1차년도에 8개 과제가 선정되어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각 과제는 하버드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 또는 서울대의과대학의 연구자 및 연구연수자가 삼각 구도를 이뤄 협력하고 있다. 특히 모든 과제에는 서울대학교병원 또는 서울대의과대학의 연구연수자가 반드시 포함돼 보스턴 현지 연구실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도록 설계됐다. 이번 프로그램이 연구 성과뿐 아니라 차세대 인재 육성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Scientific Director를 맡은 서울대학교병원 이승표 교수 역시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연구비 지원이 아니라 교육적 목적을 심사 기준에 분명히 포함시킨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과 보스턴을 잇는 협력의 무대

연구 주제는 면역학과 신경면역학, 암과 심혈관 질환, 인공지능 기반 의료영상 분석 등 양 기관이 강점을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연구자 간 매칭 과정은 상호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이뤄졌다. 예컨대 하버드의 의생명정보학자와 서울대학교병원의 임상가 그리고 서울대의과대학의 기초 연구자 등이 협력해 희귀난치성질환의 유전자를 분석, 치료 표적을 발굴하는 식이다.
이들의 협력은 실험실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기적인 워크숍과 심포지엄을 열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줌 회의를 통해 수시로 논의를 이어간다. 2025년 2월 서울에서 제1회 심포지엄을 개최한 데 이어, 2026년에는 보스턴에서 제2회 심포지엄이 예정돼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병원이 현지에 개소한 ‘보스턴오피스’는 국제 공동연구 실무를 지원하고 글로벌 연구 생태계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공동연구를 위해 제도적·행정적 기반을 다지는 노력도 병행됐다. 연구비 집행 방식, 지적재산권 배분, 개인정보 보호 규정 등 국가별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지만, 덕분에 연구자들은 연구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다.

글로벌 연구의 더 큰 비전을 향해

이승표 교수는 이번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연구자들에 대한 하버드 측의 신뢰와 인식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연구연수자들은 새로운 연구 생태계를 경험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이는 논문이나 특허로 환산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자산이다. 또한, 이번 프로그램은 글로벌 연구 무대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의 위상을 높이고, 향후 더 많은 해외 기관과의 협력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하버드의과대학과의 협약은 다른 해외 연구자들에게도 서울대학교병원을 주목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협력 요청으로 이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한국 의학 연구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이끄는 발판이자, 인류 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작은 씨앗이다. 첨단 연구 성과가 의료 소외 지역에서도 쓰일 수 있는 길을 열고, 교육받은 인재들이 다시 새로운 협력을 이끌어가는 선순환을 만들 때, 이번 협력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SNUH-SNUCM-HMS 공동연구 1차년도 선정 과제

공동연구의 글로벌 거점, 보스턴오피스

서울대학교병원은 글로벌 공동연구 및 인재 양성 강화를 위해 2025년 4월, 첨단 의료·바이오 산업의 중심인 미국 보스턴에 글로벌 R&D 허브 센터(보스턴오피스)를 열었다. 특화연구소의 첫 해외거점센터로서 하버드의과대학과의 협력뿐 아니라 다양한 국제공동연구를 뒷받침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턴오피스는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제공동연구 과제 관리, 의사과학자 양성 지원, 글로벌 바이오시장 정보 수집, 현지 연구행사 기획·지원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연구 성과의 특허 등록, 기술 이전, 기술 사업화까지 연계하며 서울대학교병원의 연구 역량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가 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바이오 컨퍼런스인 BIO USA 2025 이후에는 KHDP 플랫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스턴오피스는 글로벌 실무 지원과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조영민 기획조정실장, 김영태 병원장, 김용진 의생명연구원장, 박도중 대외협력실장

하버드의과대학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로벌 공동연구 프로그램

하버드의과대학 Global Programs 홈페이지에는 SNUH-SNUCM-HMS 공동연구 프로그램이 국제 파트너십의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하버드의과대학,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의과대학이 함께 인류 건강과 의생명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차세대 연구자를 키운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도 확인할 수 있다. 하버드의과대학 연구책임자와 연구팀에게 연간 최대 25만 달러, 한국 측 연구실에는 연간 최대 1억 원이 각각 최대 2년간 지원되며, 모든 과제에는 서울대학교병원 또는 서울대의과대학의 연구연수자가 반드시 참여한다. 연구 성과뿐 아니라 연구 인재 양성까지 함께 추구하는 점이 특징이다.

SNUH-SNUCM-HMS 공동연구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은
HMS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Mini Interview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가장 큰 혁신을 만듭니다” 데이비드 골란 Program Director
(하버드의과대학 연구/글로벌 프로그램 부학장)

SNUH-SNUCM-HMS 공동연구 프로그램은 2023년 9월 서울대학교병원 간부진이 하버드의과대학을 방문하면서 첫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세 기관은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공유했고, 두 가지 목표에 합의했습니다. 하나는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혁신적인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하버드의과대학 연구실에서 경험을 쌓아 미래의 의생명과학자와 의사과학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연구책임자와 연구연수자들 사이에 긴밀하고 지속가능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관계는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혁신과 엄밀성, 탁월성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대의과대학의 연구연수자들이 귀국해 독립 연구를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다시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첫 연구 과제에 면역학, 미생물학, 유전학, 신경면역학, 의생명정보학, 인공지능 등 서로 보완적인 분야가 포함된 것을 매우 반갑게 생각합니다. 향후 구조생물학, 화학생물학, 세포생물학, 신경생물학 등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과학적 돌파구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와 공공·민간의 지속적 지원 속에서 이 협력이 세계 보건 분야의 도전과제를 해결하고, 양측에서 더 많은 우수한 연구자를 길러내는 토대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6월 16일에 열린 SNUH–SNUCM–HMS PI & Trainee Workshop에 참석한 데이비드 골란 교수(앞줄 오른쪽 4번째)
“사람을 키우는 것이
서울대학교병원의 가장 큰 미션입니다” 이승표 Scientific Director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특화연구소 국제협력센터장)

이번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순간은, 하버드의과대학이 서울대학교병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체감했을 때입니다. 단순히 과제를 함께 수행하는 파트너를 넘어, 학문적 깊이와 연구 역량을 갖춘 진정한 협력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연구연수자들이 “이곳에 와서 새로운 연구의 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할 때, 이 프로그램이 단지 연구비 지원이나 논문 성과를 넘어 인재의 성장을 이끌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진정한 성과는 수치로 환산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이러한 성장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연구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가장 큰 경쟁력은 결국 ‘사람’입니다. 공간과 규모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인재를 발굴하고 길러내는 일입니다. 이번 공동연구 역시 단순히 성과 중심의 프로젝트에 머무르지 않고, 차세대 의사과학자들을 국제적 무대에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특정 기관의 성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의학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 인류 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첨단 연구 성과가 의료 소외 지역 환자들의 삶까지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의학의 본질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공동연구가 그런 가치와 책무를 실현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