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었나

인간이 현재 지구 생태계의 지배자라는 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생물학에서 바이오매스라는 개념이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의 바이오매스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몸무게를 합친 값이다. 과학자들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가축을 제외한 포유류 전체의 바이오매스는 인간의 바이오매스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월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지구상에 등장했던 시점에는 놀랍게도 인구가 2만 5천 명에 불과했다(유전학자들의 추정치). 그 시점 호모 사피엔스는 엄청난 가뭄으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작은 인구 집단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남극을 제외한 모든 기후대에 정착해 살고 있는 동물은 호모 사피엔스밖에 없다. 다른 종들은 새로운 기후대에 살기 위해서는 종분화가 필요한 데 반해, 인간은 종분화 없이도 북극 언저리부터 툰드라, 사막, 열대우림에 적응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엄청난 속도로 번식 성공을 이루었으며,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었을까?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인 큰 두뇌 때문일까? 두발 걷기를 하며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문화적 노하우 때문일까?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진화학계에서 대체적인 생각은 큰 두뇌 덕분에 새로운 혁신이 생길 수 있었고, 덕분에 문명을 이룩했다는 것이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켜 “인지적 적소 가설”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서 적소란 생태계에서 한 유기체가 살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존 투비(John Tooby) 등은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자연계에서 즉흥적으로(혹은 개인의 일생에 걸쳐) 인과관계를 꿰뚫어 자원을 광범위하게 이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그러한 인지적 적소를 인간만이 진화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 케빈 랠런드(Kevin Laland) 등의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들은 인간 개개인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으며, 다만 사회적 학습을 하고 집단 지성을 사용하는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현재의 성공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성공은 문화를 진화시킬 수 있는 능력 덕분이며, 공진화론자들은 이를 “문화적 적소 가설”이라고 명명한다.

인간만의 차별성, 누적적 문화

여기서 말하는 ‘문화’라는 것은 모방, 가르침 등의 사회적 학습으로 습득한 정보, 믿음 등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생각 단위를 가리킨다. 문화를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때, 최근 동물행동학에서는 집쥐, 까마귀, 가시고기, 침팬지, 흰목꼬리감기원숭이, 고래 등 여러 분류군에서 문화의 증거를 발견했다. 하지만 인간의 문화에는 이들 동물의 문화에 존재하지 않는 주요한 특성 하나가 존재한다. 바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율성이 증가하고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전문 용어로는 “누적적 문화(cumulative culture)”라 한다. 동물행동학자들이 지난 30여 년 동안 동물에서도 누적적인 문화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 증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왜 인간만이 누적적 문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왜 인간의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될까?
이에 대해 공진화론자들이 찾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인간의 사회적 학습이 여타 다른 동물들의 사회적 학습보다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학습이 정확하다는 것은 학습 중에 누락되는 정보가 적다는 뜻이며, 그로 인해 같은 수준의 정보를 지닌 개체가 많다는 뜻이고, 그러한 개체가 많을수록 우연한 통찰, 새로운 재조합, 의도적인 개선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증가하게 된다. 물론 정확한 학습이 가능해지려면 그 학습을 가능하게 만드는 심리기관이 진화해야만 한다. 인간의 언어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심리기관,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의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덧붙여 공진화론자들은 인류진화사 내내 사회적 학습 능력(모방 능력, 마음 읽기 능력 등), 언어, 가르침과 축적된 지식 간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복잡한 도구가 등장하고 난 다음, 그 도구의 활용법을 더 잘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언어가 발달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가 진화하며, 모방 능력이 발달하는 식으로 끊임없는 되먹임 작용이 이어졌다고 본다.

인류의 성공은 개인의 두뇌가 아니라
집단적 학습과 협력에서 비롯되었다.

지식에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누적적 문화의 진화사가 현대 인간의 기술과 지식 경제에 제시하는 함의는 무엇일까? 지식에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과학자의 연구 현장을 지켜보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잘 조직되고 소통이 활발한 연구 집단이 구축되면 천재 과학자 혼자서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연구 실적을 축적할 수 있다. 좋은 두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선진국의 대학과 연구소가 지금까지 성공했던 이유도 규모의 지식 경제가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의료 지식 경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연구 집단의 규모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작동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의학은 본래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다. 그 지식이 국경을 넘어 인류가 함께 협력할 때, 의학의 발전은 더 가속화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