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교감, 나눔으로 이어지다
서울 대학로의 두 소극장, 해피시어터와 컬쳐시어터에서는 매 회차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일부 좌석을 운영 중이다. 관객이 ‘기부석’이란 좌석을 선택해 티켓을 구매하면 그 금액은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기부된다. 지난 3월에는 그동안 모인 기부석 수익금 총 2,013만 9,300원을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후원회에 전달했다. 이 조용한 나눔은 연극 <운빨로맨스>를 제작한 DPS컴퍼니 노희순 대표와 연극 <라면>의 엠컬쳐컴퍼니 박태민 대표가 함께 시작한 일이다. 배우와 관객, 사람과 사람의 교감으로 완성되는 것이 공연이기에, 다시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두 대표의 나눔 철학이다. 그래서 이들은 극장 내 가장 좋은 자리에 기부를 위한 좌석을 마련했다. 그 수익금을 몸이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은 박태민 대표의 결정이었다.
“사실 저도 10년 넘게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어요. 오랜 기간 환우회 모임을 해오면서 저와 같은 병으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늘 마음이 쓰였어요. 그래서 한국어린이난치병협회에 기부를 시작한 지 10년쯤 됐습니다. 그 연장선으로 이번 기부석 판매 기금도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전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공연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오고 있다. DPS컴퍼니 노희순 대표는 주거취약계층, 문화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좌석 기부 등 지속적인 후원 활동을 해왔고, 서울문화재단과 협력한 기부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이러한 공로로 서울시 ‘2024 민관협력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서울특별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박태민 대표가 이끄는 엠컬쳐컴퍼니 역시 나눔의 경험이 깊다. 서울시복지재단과 협약해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좌석을 운영한 바 있고, 지적발달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한 후원에도 참여해 서울시 지적발달장애인 복지협회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전에는 저의 제안으로 박태민 대표와 함께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이번에는 박 대표가 먼저 제안했어요. ‘어린이 환자를 위해 해보자’고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저희의 진심이 어린 환아들의 치료와 회복에 꼭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기부는 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 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행복과 만족감이 있습니다.””
조용히 전파되는 따뜻한 진심
두 공연장의 기부석은 관객에게 별다른 홍보 없이 조용히 운영됐다. 공연 예매 창의 할인 정보 등에서 기부석에 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따뜻하고 호의적이었다.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이 무심히 던진 작은 말들이 두 대표에게 힘이 되었다.
“이런 좌석을 운영한대. 되게 좋은 회사다! 멋진 연극이네.”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그것은 이들이 기부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관객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 제작자들도 하나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도 하나의 고정비인데 부담되지 않냐’는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려와 응원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해볼까?’라며 조심스레 묻는 이들도 생겨났다. 기부 문화가 대학로 무대 뒤편에서 서서히 퍼지고 있다는 조짐이었다.
“사실 저희는 먼저 알리거나 홍보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알아주시는 관객들이 있고, 관심을 보이며 따라 해보려는 대표님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기부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기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진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노희순 대표와 박태민 대표는 그렇게 무대 뒤에서 조용한 확산을 꿈꿨고, 그 씨앗은 관객과 업계의 반응 속에서 서서히 움트고 있었다.

“우리는 공연으로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랑을 다시 어디로 돌려줘야 할지 생각했을 때, ‘기부석’이라는 방식이 떠올랐어요.”

마음을 어루만지는 또 하나의 치유
노희순 대표와 박태민 대표는 문화예술과 의료가 서로 멀리 떨어진 영역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는 몸을, 하나는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치유’라는 같은 이름 아래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공연을 포함한 문화예술이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들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고 했다. “요즘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럴수록 공연이 줄 수 있는 위로의 힘이 커진다고 믿어요. 치유라는 범위 안에서 의료와 예술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굉장히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였으면 좋겠는지 묻자, 두 사람은 그저 “어린이에게만 잘 쓰이면 된다”고 답했다. 박태민 대표는 처음 한국어린이난치병협회에 기부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수혜 아동의 정보를 받았지만, 점점 더 슬퍼져서 나중엔 받지 않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마음에 너무 오래 남아서였다고. 그렇기에 이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다. 기부석을 통해 전한 마음이 진짜 필요한 어린 생명에게 닿아 주기를.
이들이 기부와 나눔을 계속하는 이유는 관객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는 사명감 외에도, 그 과정에서 얻는 따뜻한 울림과 충만한 감정을 알기 때문이다. 노희순 대표는 기부가 주는 기쁨을, 아이를 낳고 기르는 행복감에 비유했다. “기부는 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 있어요. 아이를 가져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감정 차이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행복과 만족감이 있습니다. 더 많은 분이 그 충만한 기분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