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집하고 기록하며
서울대학교병원의 사명을 비춥니다”
김상태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
2025년은 제중원이 개원한 지 140년이 되는 해입니다. 1885년 고종 임금은 조선의 취약한 의료 현실을
직시하고 서양의학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국립병원 제중원을 설립했죠. 단지 서양 의술을 받아들이는 차
원이 아니라 가난한 백성을 치료하고 한국인 의사를 길러내기 위한 제도적 구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는 과학보다 공동체, 의술보다 민생이 더 시급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중원은 공공의료와 의료
선진화를 향한 첫 선언이었고 그 철학은 오늘날 서울대학교병원이 품고 있는 사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이 ‘국가중앙병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단지 오랜 역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공공
성과 선도성이라는 책무를 자각하고 그 무게를 감당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덕분입니다. 환자에게 가
까이 다가가는 시스템, 국가 전체를 고려한 의료정책, 시대를 앞서는 학문적 태도까지 늘 진료를 넘어선
‘무언가’를 고민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이렇듯 서울대학교병원은 단순한 하나의 의료기관
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학과 의료의 역사이기에,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촘촘히 기록해야 합니다.
역사를 전공한 제가 20년째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일해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05년 제중원 122주년과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 사업을 준비하며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이 품고 있는 의료사
의 깊이를 실감했습니다. 이 시도 덕분에 ‘대한민국 의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의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그 결과 의학역사문화원이 탄생하게 되었지요. 20년 사이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은 박물관과 기록실, 연구실의 기능을 아우르며 서울대학교병원은 물론
대한민국 의학과 의료사 전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중 저는 서울대학교병원의 역사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합니다. 의료인들에게는 자신이 선 자리를 뒷
받침하는 전통을, 국민에게는 대한민국 의학과 의료에 대한 자부심을 전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역사를 수
집하는 일은 문서를 정리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흩어진 사진과 기록을 모으고, 오래전 병원에서 일하
셨던 분들의 후손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외부 강의를 통해 국민을 만나는 일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눈에 보
이지 않는 기억들이 병원의 정체성을 만든다고 믿었기에, 오래된 박스 하나, 앨범 한 권을 대할 때마다 긴장
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담긴 단서들이 지금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중원 이야기, 한국 의료사 입문서, 화보집 등을 포함해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냈습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 작업은 경성의학전문학교 한국인 졸업생 1,039명에 대한 전수 조사였습니다. 1년
이면 될 줄 알고 시작했지만, 자료가 워낙 방대해 6년 만에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출생지부터 성장 배경, 의료 활동, 사회 기여 등 가능한 모든 부분을 추적해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의사의 모습에 더해 독립운동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비춘 지식인으로서의 삶까지 담아낼 수 있었
습니다. 이 기록은 단순한 위인 목록이 아니라, 의료인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복원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이런 기억과 기록입니다. 졸업앨범을 들고 찾아오신 유족은 사진 하나
하나의 의미를 설명해 드리자 “쓸모없을까 봐 말을 못 했지만, 기증하고 싶다”며 귀중한 자료를 두고 가
셨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다”며 출판 비용을 지원해 병원의 역사를 쉽게 풀어
쓴 책을 펴내게 해주신 교수님도 계셨지요. 이렇게 쌓인 마음들은 서울대학교병원의 과거만이 아닌, 미래
를 향한 힘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대학교병원이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기관’이라는 명성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창경궁과 대학로 사이, 역사와 문화의 축 안에 자리한 이곳이 대한민국 의료의 역사가 축적된 살아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환자와 시민, 의료인이 이곳을 단지 ‘의료기관’이 아니라 기억과 이야기가
머무는 공간으로 느낀다면, 서울대학교병원은 ‘신뢰받는 병원’을 넘어 ‘가장 사랑받는 병원’이 될 것이라
고 믿습니다.
“ 대한민국 의학 발전이야말로
‘한강의 기적’ 그 자체입니다.
의료인부터 국민까지 모두가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의료사 자료 수집과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중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병원의 역사와 대한민국 의학의 흐름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명한 책자들.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역사 이야기, 시계탑 :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다』 , 『제중원 이야기』 ,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 1879 ~ 1960』 , 『꿈, 일상, 추억, 24 서울대학교병원 130년을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