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의사가 환자 삶의 배경을 살피는 이유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나는 주로 척추의 퇴행성 질환을 진료한다. 디스크의 마모, 척추관 협착, 만성 통증, 보행의 불편, 감각 저하와 같은 증상으로 찾아온 환자들을 만난다. 대부분 불안한 기색으로 “혹시 큰 병은 아닐까요?”라고 묻지만, 나는 언제나 증상부터 확인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상황에서 심해졌는지,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어려운지 등 문진하다 보면 환자들은 기존 검사 자료들이 다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X-ray, CT, MRI 결과보다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먼저다. 퇴행 자체는 병이 아니기에 나는 자주 “큰 문제는 아닙니다. 바른 자세 유지하시고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지 마시고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을 병행하세요. 안 좋은 것만 피해도 잘 유지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설명에 위로를 받는 이들도 있지만 가끔은 “힘들게 서울대학교병원까지 왔는데, 이게 전부라고요?” 하며 서운해하는 이들도 많다. 그 마음도 충분히 존중하지만, 설명을 통해 환자가 자기 몸을 다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신경외과 의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명이 환자의 마음속 어디까지 가닿았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할 때도 많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지만 그 반응이 이해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다. 문이 닫히고 나면 말은 진료실을 떠나 환자의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몇 달 후, 환자가 다시 와서 “정말 좋아졌어요. 그때 교수님 말 듣길 잘했어요”라고 말할 때 비로소 나는 내 역할이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알 뿐이다.
설명은 빠르게 반응을 얻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견디며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수술이 기술이라면 설명은 기술 이전의 태도다. 나는 말로 치료하고 기다림으로 회복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 진료실 문을 열 힘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퇴행성 질환 치료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다. 보호자부터 의료진까지 모두의 마음이 모일 때 환자는 질병에서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한 모두
당연히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있다. 통증으로 걷지 못하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 기능 저하가 뚜렷한 경우, 감각이 둔해지고 배뇨·배변 기능까지 영향을 받는 경우 혹은 종양성 병변으로 인해 척수가 압박되며 마비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수술이 회복의 유일한 길이 된다. 단순한 통증을 넘어서 신경 기능이 빠르게 손상되거나 생명을 위협할 때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수술의 시기와 범위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부터 수술은 기술이 아니라 책임이 된다. 수술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수술법을 통해 남아 있는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환자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찾는다. 영상과 데이터를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다학제진료를 통해 재차 확인하고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수술을 준비한다. 큰 수술을 앞두고는 며칠씩 잠을 설치는 일도 있다. 수술받을 환자의 삶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시간과 기대 등이 한꺼번에 밀려들기 때문이다. 수술대 앞에 서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와 상상을 끝내는 이유다.
하지만 수술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취통증의학과, 수술실 간호사, 임상 전담 간호사 그리고 신경 감시 모니터링을 맡은 팀 등 수많은 이들이 호흡을 맞춰야 한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마음을 한데 모아 수술을 잘 끝내고 나면 뿌듯함과 피로가 몰려든다. 긴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몰입하다 보니 목과 어깨, 무릎, 발목까지 아프지 않은 관절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의료진 중 누구도 피로나 통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힘든 치료를 끝내고 회복하는 환자와 그로 인해 안심하는 보호자가 “잘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넬 때마다 나는 “잘 나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나의 말 속에는 수술 전의 불안과 준비, 수술 중의 집중과 피로, 회복을 기다리던 시간이 담겨 있다. 수술실에서 함께 버텨준 동료들을 향한 감사까지 더해서.
이렇듯 환자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서는 의료진들 사이,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가 필요하다. 이 신뢰는 많은 설명과 기다림 그리고 함께한 시간 위에 쌓인다. 그 신뢰를 힘으로 나와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은 다시 진료실과 수술실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