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주연

사진. 황필주 79 Studio

새로운 헬스케어 시대를 향한 도전

의료 AI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구글, 텐센트,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이 헬스케어 AI에 뛰어들고 있고, 앞서 의료 AI를 도입한 해외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은 이미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스탠퍼드 의대는 공학부와 협력해 설립한 AIMI(Stanford Center for Artificial Intelligence in Medicine & Imaging)를 통해 연간 3억 달러의 연구비를 수주했다. MGH CAMCA(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Center for Advanced Medical Computing and Analytics)는 6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20개 이상 수행하며 AI 기반 CRO를 운영하고 있고, MIT 산하의 연구 클리닉인 MIT Jameel Clinic(Abdul Latif Jameel Clinic for Machine Learning in Health)에서는 AI를 활용해 신종 항생제를 개발하며 가능성을 증명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병원이 앞서 포문을 열었다. 서울대학교병원 구성원들의 뜨거운 요청에 힘입은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학교병원그룹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2024 네이버 디지털 바이오 연구공모’에서 AI·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만 180여 개 과제가 몰렸고, 2023년 연구혁신위원회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67%가 의료기기/AI 연구소 설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서울대학교병원은 2025년 1월, 헬스케어AI연구원을 설립하며 연구자들 그리고 시대의 요구에 응답했다. 의료의 본질 위에서 AI를 설계하는 혁신에 나선 것이다.

의료기관이 직접 설계한 현장 기반의 연구원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사시의 종류에 따라 예후와 치료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가장 흔한 간헐 외사시의 경우 만 3세나 4세쯤이 수술하기에 가장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반면, 수술 나이와 예후는 관련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편 생후 6개월쯤부터 눈이 안쪽으로 심하게 몰리는 영아 내사시는 첫돌 전에, 늦어도 두 돌 전까지는 수술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변수가 워낙 많으니 일괄적인 시기를 정하기보다는 개인의 상황에 맞춰 수술 시기를 결정해야 해요.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처럼,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과 최적의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 검사와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학과 의료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서

언뜻 AI와 의료는 각기 다른 언어와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대학교에서는 이 또한 예외일 수 있다. 임상 의사 중 공학을 전공한 이들도 많고, 공학자 중에서도 의료 데이터를 다루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융합의학기술원, 임상유전체의학과 등에는 의학과 공학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도 다수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대학교병원은 공학과 의료 사이의 교집합을 넓혀왔고 헬스케어AI연구원을 통해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이터사이언스센터와 기술연구센터다. 데이터사이언스연구부를 모태로 하는 데이터사이언스센터는 SUPREME, DEVIEW, SNUHUB* 등을 개발했다. 앞으로는 영상, 병리, 생체신호 등 멀티모달 데이터 기반 분석 인프라까지 확장해 연구자들이 더 정교한 분석을 수행하고 새로운 진단 및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기술연구센터는 AI 기반 의료 영상, 유전체 분석, 신약 개발 등 실용성을 중시하는 연구를 수행하며, HIS.AI 프로젝트**를 통해 문서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설명가능한 AI 기법을 적용해 의료진이 신뢰할 수 있는 AI 기술도 연구하며, 국내외 AI 기업과 협력해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의료 데이터 표준화와 AI 기술 상용화에도 나선다.

* SUPREME: 병원의 빅데이터를 연구자가 누구나 손쉽게 추출할 수 있는 시스템
DEVIEW: 환자의 정보 보호 아래 가명 정보화 처리된 의무기록으로 환자의 정보를 보호하는 동시에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SNUHUB: 빅데이터/AI 연구를 위한 리소스 구축을 돕는 시스템

** HIS.AI 프로젝트: EMR 시스템에 연동 가능한 헬스케어용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광학 문자인식)과 LLM(Large Language Model, 거대 언어 모델)을 검증 및 적용해, 문서 입력 과정의 업무 지연과 오탈자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어 성능에 최적화된 병원 자체 거대 언어모델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변화를 위한 기술

‘헬스케어AI연구원’이라는 이름에는 서울대학교병원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장병탁 연구원장은 특히 ‘메디컬(Medical)’이 아닌 ‘헬스케어(Healthcare)’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강조한다. “헬스케어AI연구원이 탄생시킬 기술들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예방의학 등을 포함해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한 모든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실제로 헬스케어AI연구원은 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더 나은 진료, 의료진을 위한 더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한 구심점을 지향한다. 동시에 ‘기술을 이해하는 의사’, ‘의료를 이해하는 공학자’를 동시에 길러내야 하는 ‘인재 생태계’의 거점이다. 의료진 대상의 AI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 교육, 전공의·전임의 대상의 의료 AI 연구 양성과정 등을 병행하는 이유다. 이렇듯 헬스케어AI연구원이 그리는 미래는 서울대학교병원이나 서울대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향후 사업화를 향한 로드맵을 설계할 예정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을 향한 관심과 지지가 이어질 때, 서울대학교병원은 물론 우리나라 의료 AI는 더 멀리, 더 깊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연구센터는 신뢰성과 설명 가능성을 갖춘 의료 AI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임상 환경에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 데이터 표준화와 통합을 통해 연구 기반을 강화하며, 국내외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윤순호 / 헬스케어AI연구원 기술연구센터장(영상의학과 교수)

“데이터사이언스센터는 연구자가 원내 데이터를 활용해 AI 연구를 쉽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안전하고 체계적인 데이터 준비, 분석 환경 제공, 그리고 우수한 인프라 확립을 통해 환자를 위한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승미 / 헬스케어AI 연구원 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산부인과 교수)

Mini Interview
  • “글로벌 의료 혁신의 중심 구축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장병탁 / 헬스케어AI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AI연구원장)

    의료만큼 AI가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영역은 드뭅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600만 명에 달하는 임상데이터,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 그리고 서울대학교 AI연구원의 기술 기반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자산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헬스케어AI연구원의 특징입니다. 이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는 의료 AI가 향해야 할 방향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원은 데이터의 통합과 표준화를 강화하고, 임상과 연구 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협력 모델을 구상 중입니다. ‘헬스케어AI연구원’이라는 이름에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연구원장으로서 저는 기술과 의료가 함께 나아가는 모델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의료 AI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력하며 글로벌 의료 혁신의 중심에 서겠습니다. 그 결과로 언젠가는 헬스케어AI연구원에서 노벨상급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신뢰에 기반한 인간 중심
    의료 AI를 만들겠습니다” 이형철 /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AI는 이제 임상현장의 도구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하고 반복적인 행정 작업을 줄이며 환자 안전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죠. 예를 들어, AI 기반의 임상결정지원 시스템은 진단 속도를 높이고, 약물 선택의 정확성을 개선하며, 의료진이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일입니다. AI는 병원의 시스템과 의료진의 사고방식을 바꾸며, 결국 환자에게 가닿는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뢰를 얻은 AI 기술만이 실제 진료와 연구에서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헬스케어AI연구원의 부원장으로서 환자 중심, 현장 중심의 기술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이번 시도는 상상 이상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료 현장과 기술의 거리, 의료진과 데이터의 간극을 줄이는 이 시도에 많은 관심과 응원이 더해진다면, 서울대학교병원은 글로벌 의료의 미래를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