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 잊을 수 없는 인연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고요한 자택에서 만난 송익선 후원인은 인터뷰 내내 ‘친구’라는 단어를 입가에 올렸다.
그의 삶을 이야기할 때 서울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박찬일 교수와의 인연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줄곧 같이 다녔어요. 대학은 달랐지만 이 친구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오랜 벗과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대화, 함께 필드를 거닐던 평범한 일상은 그 자체로 충만한 신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송익선 후원인에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함께 보낸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요즘 들어 지나온 시간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누군가와 맺어온 인연,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 병원을 통해 느꼈던 신뢰와 고마움은 그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마음들을 혼자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제는 제가 받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오랜 인연을 소중히 품고 그 기억을 나눔으로 이어가는 송익선 후원인의 모습에서 삶을 대하는 겸허하고도 단단한 태도가 느껴졌다.
세월을 품고 자라나는 작은 나무들
집 베란다에는 그가 오랜 시간 정성으로 보듬어온 분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화분 안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제 모양을 갖춰가는 나무들은 어딘가 모르게 주인의 모습과 닮았다.
“옛날에는 운동이라면 뭐든 좋아했어요. 테니스도 하고 골프도 치고, 학창 시절에는 체육부장까지 맡을 정도로 활동적이었으니까.”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의 눈빛과 손짓에 다시금 생동감이 감돌았다.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던 청년은 시간이 흘러 이제 고요한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노년이 되었다.
“이제는 분재를 가꾸며 조용하게 지내는 게 좋아요.”
분재를 그토록 아끼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분재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거든요.”
농담처럼 던진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긴 세월 사람 사이에서 겪었던 수많은 희로애락이 응축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 경쟁과 갈등 속에서 느꼈던 서운함도, 사람 간의 미묘한 거리를 겪으며 마음을 다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분재는 오랜 공을 들여 천천히 돌보는 만큼 딱 그 시간만큼의 정직한 모습으로 자라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하며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도 오래도록 바라봐야 하는 작업. 송익선 후원인은 그런 시간들이 비로소 자신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고마운 마음이 나눔이 되기까지
서울대학교병원과의 인연 역시 이 긴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렸다. 병원을 오가며 의료진에게 느꼈던 두터운 신뢰와 고마움,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인 박찬일 교수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이 병원을 향한 굳건한 믿음으로 이어졌다.송익선 후원인은 발전기금을 전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살아오며 받은 고마운 마음을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살아 있는 동안 좋은 일 하나는 꼭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았거든요.”
그의 말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오히려 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후원을 대단한 선행으로 치장하기보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당연한 마음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이 앞으로도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치료를 망설이는 환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길 바란다는 진심 어린 당부도 잊지 않았다.
“병원이라는 곳은 결국 생명을 살리는 곳이잖아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차별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그는 결국 사람에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재물이나 성공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했던 마음, 그리고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되돌려주려는 따뜻한 의지가 삶을 비로소 완성한다는 것이다.
“병원이라는 곳은 결국
생명을 살리는 곳이잖아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차별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혼자 걷는 연습 끝에 피어난 평온
인터뷰를 마치고 근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사진 촬영을 이어갔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은 조용했지만 결코 약해 보이지 않았다.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던 그는 나지막이 말 한마디를 건넸다. “나이가 들면 혼자 보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는 이미 긴 시간을 지나오며 만남과 이별, 건강과 노년이라는 삶의 필연적인 변화들을 충분히 겪어낸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남겨진 시간들을 조용히 껴안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전한 후원은 그가 세상에 남기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이자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좋은 마음 하나는 꼭 남기고 싶다는 소박하고도 위대한 바람. 그리고 그 마음은 서울대학교병원을 통해 또 다른 환자의 회복과 희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자신만의 형태를 빚어가는 한 점의 분재처럼 송익선 후원인의 나눔도 그렇게 조용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