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살덩이_FUNKY SCIENCE


감수. 강형진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과학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이렌 졸리오-퀴리(Irène Joliot-Curie, 이하 이렌)는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Maria Skłodowska-Curie)의 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렌은 어머니가 제작한 휴대용 X-ray를 활용해 부상당한 병사들의 몸속에서 총알 등 금속 파편을 확인함으로써 외과 의사들의 치료를 도왔다. 이때의 경험은 이렌에게 과학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후 이렌은 라듐연구소에서 자신의 연구에 힘쓰는 동시에 제자를 키우는 데에도 힘썼다.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과학자를 양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렌은 남편과 함께 인위적으로 방사능 원소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3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인위적으로 방사능 원소를 추출해 인류가 물리학부터 의학까지 다방면에 걸친 발전을 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사성 원소를 활용한 질병 진단과 방사선 치료법이 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렌의 연구는 방사성 원소를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며 인류에게 큰 선물을 주었지만, 이렌은 정작 방사능 노출로 인한 백혈병으로 1956년 사망했다. 최근 화제가 된 CAR-T 치료제의 등장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새로운 삶의 기회를 가져다준 CAR-T 치료제

2012년 4월, 6세의 백혈병 환자였던 에밀리 화이트헤드가 평범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 에밀리는 아무 대안 없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항암화학요법은 효과가 없었고 조혈모세포이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에밀리의 부모가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진행하는 CAR-T 요법 임상 1상 피험자로 등록시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6주간 격리된 채로 유전자를 삽입한 T세포를 혈액으로 주입하는 과정을 거친 에밀리는 5월 10일, 몸속의 암세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CAR-T 치료제를 최초로 투여받고 완쾌된 소아 환자가 된 것이다.
CAR-T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인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CAR-T 치료제에서 CAR은 Chimeric Antigen(항원) Receptor(수용체)를 뜻한다. 핵심인 Chimeric은 신화 속 동물인 키메라(Chimera)에서 파생된 단어로, 생물학에서 키메라는 ‘하나의 생물체 안에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가지는 조직이 함께 존재하는 현상’이다. 결국 CAR-T 세포에서 CAR는 ‘자연적으로는 세포가 가질 수 없는 특정 표적을 인식할 수 있는 수용체-T 세포 표면에 인위적으로 항체를 발현시키고 발현된 항체를 통해 암세포 항원을 표적하고 항체에 인위적으로 연결된 T세포 수용체를 통해서 T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술’이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세포는 저마다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서, 이 수용체를 통해 서로 인식하고 상호작용한다. 그중 에밀리가 투여받은 CAR-T 치료제인 킴리아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서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을 인식한다. 반면 기존 항암화학요법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아군 적군 구분 없이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기에 정상세포도 영향을 받아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CAR-T 치료제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청(FDA)가 허가한 치료제가 7개나 될 정도로 CAR-T 치료는 항암화학요법이 듣지 않는 환자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자리 잡았고 다국적 제약사들은 적극적으로 CAR-T 치료제 개발 및 상용화에 매진하고 있다. 극복해야 할 부작용은 여전히 있지만 기존 혈액암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치료법이라는 증거다. 이제 CAR-T 치료제는 에밀리가 앓았던 백혈병에 발현되는 CD19뿐 아니라 BCMA를 표적으로 하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렌도 CAR-T 치료제로 완치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다. 이렌이 어떤 백혈병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렌이 비정상적인 CD19 B세포로 인한 혈액암을 앓았다면 치료에 성공했을 가능성은 크다. 2012년 첫 투약이 이루어진 이래, CAR-T 치료제의 효과와 안전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덕분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의 CAR-T 치료제 서울대학교병원은 2022년 4월 자체 개발·생산한 CAR-T 치료제를 소아청소년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에게 처음 투여하는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비용 부담으로 인해 CAR-T 치료 접근이 어려웠던 국내 환자를 위해 2018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지 약 4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기부금 지원이 시작된 2024년 4월부터는 CAR-T 치료 대상 환자가 더욱 확대되었다. 현재까지 기부금으로 CAR-T 치료를 받은 8명은 특별한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향후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주요 병원과 CAR-T 치료 다기관 연구를 진행해, 50여 명의 환자에게 자체 생산한 CAR-T 치료제를 공급할 예정이다. 특히 국내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 활성화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또 다른 준비된 기적을 위해

CAR-T 치료제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맺은 결실인 동시에 과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될 때 가져올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과학과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이렌 졸리오-퀴리의 발자취는 큰 울림을 준다. 과학 명문가에서 성장한 이렌은 ‘과학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과학기술이 올바르게 사용되기를 희망하며 연구에 힘썼고 평생 평화를 지지했다. 비록 우리가 다시 이렌을 이 세상으로 데려올 수는 없지만, 이렌이 가졌던 신념은 이어갈 수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이 CAR-T 치료제를 자체 생산해 치료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도 혁신적인 치료제들이 더 많은 환자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살덩이_FUNKY SCIENCE, 바이오/헬스케어 콘텐츠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에서 분자면역학,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Science communication and public engagement를 전공했다. 직접 그린 캐릭터로 생명과학 기반의 여러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원리를 ‘할아버지’ ‘할머니’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바이오/헬스케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마리 퀴리와 그녀의 딸 이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