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연구자
오도연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진행성 담도암의 치료법을 바꾸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면역항암 제 임핀지(Imfinzi)와 기존 항암치료를 병용하는 글로벌 임상 3상 연구(TOPAZ-1)의 단독 글로벌 PI(책임연구자)로서, 담도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시한 것이다. 2022년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GI)에서 발표된 이 연구는 전 세계 담도암 치료 가이드라인에 반영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기존 세포독성 항암치료만으로 치료받 던 환자들의 생존 기간이 연장되었고, 2년 생존율은 기존 대비 15%P 이상 향상되었다. 무엇보다 한국인 연구자가 글로 벌 3상 연구를 성공시킨 성과는 국내 종양학 연구의 큰 전환점으로 여겨질 만하다. 그 공로는 제27회 범석상, 제28회 함춘학술상 등의 수상으로 이어졌지만 오도연 교수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누릴 혜택”이라고 말한다. 오도연 교수에게 연구는 논문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 이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진료실과 연구실, 회의실, 암연구소를 오가지만 오도연 교수의 발걸음은 항상 단 단하다. 눈 앞의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법을 찾겠다는 의지가 물리적 피로를 앞서는 것이다.


A. 퇴근 시간은 들쑥날쑥해도 출근시간은 일정해요. 아침부터 컨퍼런스가 있는 날도 많은 데다 낮에 있을 랩 미팅 등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시간을 맞춰야 하죠. 지난 주말에는 일본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하고 토요일 오후에 귀국했어요. 환자분들께서는 학회 참석으로 인한 휴진을 아쉬워하시지만 사실 새로운 치료 옵션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에요. 연구는 결국 더 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일과 연결되니까요. 하지만 진료 역시 철저히 해야 하니 일요일 밤늦게까지 다음날 외래 환자 차트를 확인했습니다.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만나든 진료 전 차트 확인은 기본 중의 기본이죠.


A. 글로벌 임상연구에 있어 텔레컨퍼런스(원격회의)는 필수입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각국 연구진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임상 진행 상황을 공유해야 하니까요. 임핀지(Imfinzi) 글로벌 3상 임상 연구(TOPAZ-1)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어요. 저는 아시아인으로서는 드물게 단독 글로벌 PI(Principal Investigator, 책임연구자)를 맡아 연구를 총괄하며 글로벌 연구진과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그 결과 담도암에서 처음으로 면역항암제가 도입되었고, 기존의 화학항암제 중심이던 표준 치료법이 10년 만에 바뀌었습니다. 임핀지가 담도암 1차 치료제로 승인되고 면역항암제 병용 요법이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담도암에서도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증명했으니 향후 다양한 면역치료제가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점이 가장 뿌듯해요.


A. 정말 힘든 상황에서 오시는환자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불안해하며 어디든 매달리고 싶어 하시죠. 증명되지 않은 치료법들이나 음식들에 관해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요. 저는 “차라리 최상급 한우 사드세요”라고 말씀드려요. 환자와 보호자들 앞에서는 덤덤한 척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 힘없는 우리 암 환자들을 이용하려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더더욱 연구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치료 옵션이 많아야 환자분들이 믿을 수 없는 치료법들에 흔들리지 않으실 테니까요.


A. 새로운 임상연구 개시 미팅이 있었어요. 보통 새로운 임상연구는 한달에 2~3개 정도 개시됩니다. 오늘 개시한 임상연구는 췌장암에서 표준치료 대비 새로운 치료제가 생존기간을 더 향상시킬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환자 등록과 함께 첫 투약이 진행되었으니 좋은 결과가 나와서 췌장암 환자들을 위한 치료 옵션이 더 다양해졌으면 합니다.


A. 오늘은 실험실 연구 진행 상황 확인과랩 미팅이 있어서 왔습니다. 사실 실험실 연구는 외국 연구자들도 놀라는 부분이죠. 임상의사가 실험적 연구까지 아우르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치료를 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더 좋은 치료제를 제공할 수 없을 때의 무력감이 훨씬 크거든요. 특히 애정을 쏟으며 밀접한 치료 시간을 함께 보내던 환자가 갑자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오죠. 사람으로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실감을 느끼지만, 의사니까 더 좋은 치료를 위해서 연구를 계속 해야죠. 의과대학생 때는 ‘연구가 재미있으니 평생을 바치겠다’라는 이상적인 생각을 했다면, 지금 연구는 정말 절박한 문제입니다.

A. 제약사, 정부 및 승인기관, 연구자 그리고 환자까지 다양한 주체가 연결되어 있어요. 95%의 입장은 겹쳐지지만 이익이 상충하기도 하죠. 그럴 때 환자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건 연구자밖에 없어요. 환자 한 사람의 안타까움을 해소하려고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주거나 제약사가 손해를 감수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연구자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잖아요. 더구나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종양이 아니라 사람을 보며 전인적 치료를 해야 하니까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대변하려고 노력해요.


A. 9시 전에 퇴근하니 늦은 편은아니에요. 오늘처럼 환자도 많이 보고 미팅도 여러 개 잡혀서 조금 힘에 부쳤던 날은 보람 있는 일을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알지 못하는 미국인 보호자가 보낸 이메일 같은 것들이죠. 여동생이 진행성 담도암 4기 진단을 받고 너무 힘들어했는데 임핀지 치료 후 상태가 좋아졌다는 내용이었어요. 완치가 힘든 병이라 결국은 세상을 떠났지만 치료제 덕분에 1년여 동안 가족들이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고 하셨죠. 특히 ‘당신이 하는 연구가 많은 이들에게 임팩트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다’라는 구절은 연구하는 자세를 다잡게 했어요. 제가 모든 일을 할 수도 없고 세상 모든 환자를 돌볼 수는 없지만 제 앞에 있는 환자에게 좋은 치료제를 꼭 드리겠다고 다짐해요. 그 과정에서 임핀지 같은 결과가 나오면 수백, 수천 명을 살리게 될 테니까요.
휴먼비잉을 치료하는 의사
오도연 교수는 ‘휴먼비잉(Human being)’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의학에서 환자는 질병을 가진 대상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혈액종양내과도 종양세포만이 아니라 몸 전체와 환경까지 전인적 치료에 매력을
느껴 선택했다.
“가장 힘든 질환을 가진 환자가 가장 약자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의사가 환자 입장을 헤아리려고 애써야죠.”
그래서 더 나은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제한적인 치료 옵션을 확장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설계한다.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치료법을 만들 기회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오도연 교수의 하루는 연구와 진료, 컨퍼런스로 가득 채워졌다. 원내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있느냐는 궁금증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대신 연구실과 진료실을 채운 펭수 캐릭터에 대해 묻자, 오도연 교수는 “힘든 순간에 펭수를 보며 여유를 찾죠!”라며 가장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위암, 췌장암, 담도암 분야를 주요 연구 분야로 삼아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연계하는 중개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해왔다. 담도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면역항암제와 기존 항암치료를 병용하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연구자 주도의 2상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해 글로벌 3상 임상연구(TOPAZ-1)를 총괄했다. 이를 통해 10년 만에 진행성 담도암의 표준 치료법을 바꾸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연구 결과는 2022년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GI)에서 발표되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27회 범석 논문상, 제28회 함춘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미국임상종양학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 ASCO)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글로벌 종양학 연구 및 네트워크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도 담도암 및 기타 소화기암에서 면역항암제와 표준치료를 결합하는 연구를 지속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 개발에 몰입 중이다.